[지지대] 황혼의 분노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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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경찰서는 지난 19일 자신과 아내를 폭행하는 아들(51)에게 흉기를 한차례 휘두른 혐의로 A씨(79)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농사일도 거들지않고 허구한 날 빈둥거리는 아들이 또 술을 먹고 들어와 혼냈더니 목을 조르고, 말리는 부인까지 폭행했다”면서 “평소에도 부모에게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려왔다”고 진술했다.

 

40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도 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20일 아내와의 대화에 끼어든 아들(46)과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여러번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B씨(79)를 체포했다. 아들은 알코올 의존 증상으로 치료를 받아 왔으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을 애지중지 금쪽같이 키워온 자식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무서운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원인이야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독립하지 못한 채 얹혀사는 중년 자식과의 ‘불편한 동거’다. 은퇴해 가장이라는 부담을 덜고 느긋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서도 밥값 못하는 자식 걱정까지 해야하는 답답한 심정이 우발적인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노부모와 성인 자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두 사건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학대나 폭력과 같은 맥락이다. 노인과 중년 자녀 사이의 폭력과 범죄는 갈수록 증가 추세다. ‘2015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1천905건으로 전년보다 12.6% 증가했다. 사법기관 등에 의해 노인학대로 판정받은 건수도 8.1% 늘어난 3천818건이었다. 전체 가해자의 69.6%가 친족이고, 그중 아들이 36.1%에 달했다.

 

인생 황혼기를 맞은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힘없는 노인의 경우 자녀와 물리적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흉기를 드는 경우가 많아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는 건강 상태와 경제 형편이 안좋아 부양받을 수밖에 없고, 실업ㆍ이혼 등의 상태인 자녀 또한 부모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할 처지인 경우가 많다. 서로 내키지않는 동거를 하다보니 극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상황이 악화하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진다.

 

부모 자식 관계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뜻이다. 그 어떤 인연보다 깊고 소중한 천륜을 깨는 흉폭한 사건이 자꾸 일어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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