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언론사 간부를 초청하는 청와대 오찬이 있다. 참석자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제한된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싸운다. 튀는 질문을 해보려는 두뇌 싸움도 치열하다. 참석자들에겐 차라리 전쟁터다. 그런데 2007년 1월 30일 지방언론 편집보도국장단 오찬은 달랐다. 발언 경쟁도 없었고 튀는 질문도 없었다. 질문하면 말려드는 듯한 분위기, 왠지 들러리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다. ▶윤승용 홍보수석의 진행 발언이 더 맥빠지게 했다. “혹시, 지역 현안에 대한 질문이 있으시면 메모로 제출해 주시면 차후에 서면으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지역 현안에 대한 구체적 질문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역을 대표해 참석한 국장들이다. 그들에게 지역 현안을 묻지 말라고 했다. 원하는 질문만 받겠다는 거였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이었다. ▶그래도 버릇처럼 손을 들었다. 공식 기록에 남아 있는 내 질문은 이렇다. ‘이참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축소시키는 쪽으로의 개헌을 고민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노 대통령의 답변은 2천 자 가까이 길다. 하지만, 핵심은 한 줄이었다. ‘지금 우리 한국의 대통령 권력은 절대로 지나치게 강하지 않습니다’며 부인하면서 ‘국정을 많이 이양하고 외교·국방에 좀 더 치우친 국정을 하는 것이 좀 필요하다. 대통령은 우리 한국의 대통령에게 외교적, 외교적 업무의 수요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라고 했다. ▶오찬은 끝까지 썰렁했다. 춘추관으로 돌아오는 경내 버스에서 참석자 몇이 투덜댔다. “개헌론에 들러리 서라고 부른 거야 뭐야?” “이러려고 전라도에서 오라고 한 거야?” 그랬다. 그게 분위기였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무시됐다. ‘임기 다 끝나가는데 무슨 소리냐?’라는 빈정거림이 많았다. ‘대선 패배가 역력하니까 하는 소리’라는 비난도 많았다. 모든 게 1년 남은 임기 탓이었다. 모처럼 선거가 겹치는 기회라는 설득도, 임기를 단축할 용의가 있다는 양보도 ‘임기 말’ 앞에 소용없었다. ▶2016년 10월 24일. 대통령발 개헌론이 또 나왔다. 1년여 남은 임기, 이런저런 구설수…. 9년 전 그것과 닮은꼴이다. 분위기도 똑같다. ‘임기 말 대통령이 위기 돌파용으로 던진 화두’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다 보니 찬성하던 여론까지 돌아선다. 지난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헌제안 때는 찬성이 69.8%였다. 그제(24일) 박 대통령이 제안하자 41.8%로 뚝 떨어졌다. 임기 초반 마음을 비우고 제안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개헌’은 임기 4년을 넘어서야 보이는 화두인 듯하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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