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당시 국내에 처음으로 타조를 들여와 어려움에 빠진 낙농업자들의 살길을 마련하고, 야생동물인 타조를 식용가축으로 인정받도록 관련법을 마련하는 등 20여년간 타조 사육 농가의 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남시원 한국타조협회 회장(66).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에 위치한 우농타조마을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사람들은 나를 ‘타조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며 “지난 1998년 7월 생소했던 야생동물인 타조를 국내에 들여온 때부터 현재까지 20여 년을 오로지 ‘타조’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 회장이 타조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IMF를 겪던 지난 1997년부터다. 그는 원래 젖소 100마리를 사육하던 부농이었지만 IMF 당시 낙농사업을 접게 됐고 일본과 베트남, 중국 등을 돌며 살길을 찾아나섰다.
그 때 일본에서 만난 것이 타조였다. 당시 일본은 타조 고기와 뼈, 가죽 등을 다양한 용도로 판매하고 있었다. 남 회장은 “타조가 100년을 너끈히 사는 장수 가축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며 “특히 질병이 거의 없는 타조의 특성 때문에 수의사 없이도 사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릎을 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 회장은 귀국한 뒤 곧바로 종자돈 4억 원을 마련했고, 수소문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산 5년생 타조 40마리를 미국에서 수입했다. 습도를 맞추지 못해 제때 타조알이 부화하지 못하는 등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타조를 기르는데는 별다른 기법도 필요없었다.
그는 “1년이 지나자 타조의 키는 2m가 훌쩍 넘었고 몸무게도 130kg에 육박했다”며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IMF 당시 줄줄이 문을 닫았던 낙농농가들도 빚을 내 타조 사육 대열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사육은 순주로웠지만 도축할가 되자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 국내 축산 관련법은 타조를 야생동물로 분류하고 있어 돼지나 소처럼 도축할 수 없었고 이에 400여 곳의 타조농가들의 피해가 엄청 났다.
남 회장은 타조 사육농가들과 힘을 합치고자 한국타조협회를 만들어 관련법 개정에 나섰다. 2년여의 투쟁 끝에 ‘축산물 가공 처리법’에 타조 관련 항목을 포함시켰다. ‘가축’으로 인정받은 타조는 도축이 가능해졌고, 식품공정(매뉴얼)도 도입됐다.
이어 농촌진흥청, 경희대학교 한방가공학과에서 “타조고기가 심혈관질환과 퇴행성질환치료에도 탁월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면서 타조 농가들은 더욱 더 안정적인 판로를 구축하게 됐다.
현재 아들과 함께 타조 10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남 회장은 농장 내에 중국관광객을 겨냥한 ‘타유정’이라는 타조알약과 추출물, 타조오일비누를 판매하는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홈쇼핑 판매 제안을 받기까지 했다.
남 회장은 “타조 사육은 이젠 대중화 됐다”며 “내 아들처럼 젊은 농부들이 타조를 사육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가진 노하우를 제공하는 등 힘껏 도와 타조 사육 농가의 활성화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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