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포토라인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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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은 신문ㆍ방송사 사진·카메라 기자들이 더 이상 취재원에 접근하지 않기로 약속한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과열 취재 경쟁으로 인한 몸싸움과 이에 따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포토라인 설정은 1993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검찰 소환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정 회장은 국민당 대표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려 나왔는데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정 회장 이마가 부딪혀 찢어지는 상처가 났다.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질서유지 차원에서 포토라인이 설정됐다. 사진기자나 카메라 기자들은 포토라인의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갑작스런 시위나 시민들의 돌출 행동이 발생할 경우 포토라인이 무너지기도 한다.

 

포토라인은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관행이다. 피의자나 참고인을 검찰청사 앞에 잠깐 멈추게 한 뒤 사진을 촬영하고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를 풀어주는 짧은 의식이기도 하다. 보통 검찰청사 1층 차에서 내려 포토라인 앞까지 걸어서 10초도 안걸리는 시간이지만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이 짧은 시간이 피의자들에겐 조사받는 시간보다 더 길고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사적(私的) 형벌’ 또는 ‘현대판 단두대’라고도 한다. 이에 어떤 피의자들은 플래시 세례를 피하기 위해, 눈빛과 표정을 숨기기 위해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포토라인을 지나기도 한다.

 

검찰청 포토라인이 설정된 이후 지난 22년간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이 줄줄이 이곳에 섰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등은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나왔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들과 형이 포토라인에 섰다. 이젠, 현직 박근혜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느냐 마느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 최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사건 당사자들이 줄줄이 소환돼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은 수사 결과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공소장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범죄 혐의 전반에 상당한 공모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도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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