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박정희’ 휴교령·‘박근혜’ 동맹 휴업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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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선언이 나왔다.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 정지 등이 골자였다. 10여 일 뒤 이 선언에 ‘10월 유신(維新)’이란 명칭이 붙었다. 갖가지 형태의 압제 수단이 동원됐다. 정치활동 목적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됐다.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에 대한 검열이 시행됐다. 여기에 대학생들을 억압할 수단, 즉 캠퍼스 안정화 방안도 포함됐다. 그 중 하나가 휴교령(休校令)이다. 주요 대학이 휴교령으로 교실문을 잠갔다. ▶공교롭게 ‘유신’의 몰락은 그 대학에서 시작됐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학생 5천여 명이 시작한 교내 시위가 저녁 무렵 시내로 번졌다. 다음 날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관공서가 공격받았고 인근 마산으로 확산됐다. 19일 마산대와 경남대 학생들이 시위에 가세했다. 여기에 노동자와 고등학생까지 나섰다. 이른바 ‘부마 항쟁’이다. 그리고 10여 일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됐다. ▶‘유신’ 이후 44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동맹 휴업을 선언했다. 목적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다. 결정에 앞서 총학생회는 동맹휴업 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여기에 33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도 오는 25일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역시 학생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쳤다.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의 동맹 휴업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학마다 내건 동맹 휴업의 목표는 같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세월의 길이만큼 많이 다른 휴교ㆍ휴업이다. 40년 전 휴교는 국가 권력이 결정했고, 40년 뒤 휴업은 학생이 결정했다. 40년 전 휴교는 입을 막는 것이고, 40년 뒤 휴업은 입을 여는 것이다. 40년 전 휴교 때는 무대 뒤에서 말했지만, 40년 뒤 휴업 때는 무대 위에서 말한다. 40년 전 휴교는 경찰이 주인이었고, 40년 뒤 휴업은 학생이 주인이다. 40년 전 목표는 아버지 대통령이었는데, 40년 뒤 목표는 딸 대통령이다. ▶그제나 지금이나 닮은 것은 학생들이다. 부패 없는 세상을 향한 목적이 같다. 부패 권력자를 끌어내리겠다는 목표가 같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다. 결과까지 같아질까 봐 걱정이다. 40년 전 권력자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40년 뒤 권력자의 마지막이 어찌 될지 걱정이다. 영화롭고 행복한 마지막은 어차피 멀어진 듯하다. 그렇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른 ‘질서 있는 정리’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결정의 절반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렸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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