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뛰는 영란이, 나는 순실이

김규태 사회부 차장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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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는 또 다른 이슈가 묻는다고들 한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와 경제계, 언론계, 교육계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주목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점심은 물론 저녁 약속과 술자리는 남의 나라 얘기였고, 그에 따른 여가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갈 것 같은 ‘장밋빛 청사진’이 곳곳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란이’를 한방에 무너뜨린, 더 센 녀석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었다. ‘최순실’. 그녀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그 공간에, 측천무후와 서태후를 능가하는 장악력을 보이며 ‘여성 상위 시대’의 방점을 찍은 인물이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계를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도 모자라 이 나라 스포츠계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박태환’과 ‘김연아’까지 간섭하는 남다른 오지랖을 발휘했다.

 

2016년 11월, 이제 완벽하게 ‘순실이’는 ‘영란이’를 이 사회에서 지워 버렸다.

 

▶“오늘 저녁에 번개 어때요?” 전 출입처 홍보 담당자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도통 연락이 없던 터라 서운함과 반가움이 적절히 배합된 묘한 기분이었다. 마감을 하고 회사 앞 선술집에서 만난 우리 둘의 화제는 단연 ‘최순실 게이트’였다.

세세한 안줏거리 내용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 시간 가까운 번개팅은 줄곧 최순실 얘기로 귀결됐다. 두 달 전에 만나 김영란법을 고민하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 이제 자주 만나 이 답답한 대한민국 사회를 걱정하며 술 한잔하자고요” 헤어짐 속에 우리가 나눈 인사말이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없애겠다고 뛰던 ‘영란이’는 종적을 감췄다. 대신 그 자리 위에선 ‘순실이’가 날고 있다. ‘권불십년(막강한 권력도 10년을 가지 못함)’이라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제트 엔진을 달고 한없이 박근혜 정부에서 고공행진을 한 최순실의 모든 실체를 밝혀 다시는 쓸데없이 나는 일이 없도록 그 날개를 꺾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촛불로 태우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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