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역량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필자는 선학들이 여태껏 제시한 역사의 정의를 학생들에게 제시하며 학기의 첫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데 요즘처럼 크로체(Benedetto Croce)와 카(E. H. Carr)가 각각 정의한 ‘모든 역사는 현대사’, ‘역사는 과거와의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가 생생하게 강의 현장에서 와 닿던 때는 별로 없다.
역사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그 날의 주제가 오늘날 우리 현실에 대한 논의로 쉽게 이어지곤 하는데, 근현대사로 들어올수록 학생들의 참여도는 높아진다. 그저 옛날이야기로만 들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 수업시간 주제는 일제강점기였다. 학생들에게 이 시대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에 대해 수업을 시작하며 물어 봤다. 한 학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를 가장 멀게 만든 시대입니다.” 이 학생의 한 마디는 그 날의 모든 수업 내용을 포괄하고도 남았다. 그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부는 지난주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강행했다. 이미 지난 정부시절 한 차례 여론에 떠밀려 타결 직전 중단되었던 터였다.
작년 위안부합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채 꺼지지도 않았다. 안보적으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면 그 만큼 여론에 끈질기게 매달렸어야 했다. 정·재·문화체육계를 넘나드는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사태로 여론의 지지를 상실한 정부가 취해야 했을 정상적인 외교행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민심을 거스른 위정자의 말로는 항상 불행했다. 그들의 업적은 또한 부정(不正)되었다. 이것을 역사는 역사의 정의(正義)로 기록해 왔다.
조의행 신한대학교 초빙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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