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국정 교과서] 현대사집필진 역사전공 없고 우편향… 또 다른 갈등 속으로

‘대한민국 수립’ 등 보수진영 주장 그대로 반영
전교조 “즉각 폐기” 요구… 교총은 “수용 불가”
교육부 “학생들 올바른 국가관 확립 위해 심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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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베일에 쌓였던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이 28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교육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역대 정부의 공과를 균형 있게 기술했다는 평가를 한 반면 ‘대한민국 수립’ 표현 등 보수진영에서 주장한 내용이 상당 부분 그대로 반영, 대한민국을 또 다른 갈등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현행 교과서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돼 있는 표현은 ‘대한민국 수립’으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북한 정권 수립’으로 수정됐다.

또 6·25가 북한의 불법 남침임을 분명히 서술하고 북한의 군사도발, 인권문제, 핵개발 등에 대한 서술도 소주제로 구성해 대폭 늘렸다. 천안함 사건도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으로 도발 주체를 명확히 표현했다.

 

역대 정부와 관련한 서술은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상에 대한 긍정 내용이 늘어났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등과 관련해서는 현행 교과서에 ‘동해’ 표기가 대부분 들어있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역사적 사료와 함께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기술했다.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도 구체적 사료와 함께 제시했다.

 

반면 건국절(1948년 8월15일) 논란을 일으킨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나 경제개발계획, 새마을운동 등 산업화 시기 긍정 측면을 부각한 기술 등은 모두 뉴라이트 등 보수진영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1명의 집필진 대부분이 보수성향이 강한 학자들로 채워진데다가 현대사 분야에선 역사학 전공자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같은 내용의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자, 반대 입장의 우세 속에 찬성의 목소리도 표출됐다.

 

우선 보수ㆍ진보 성향 교원단체가 모두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보수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국정교과서의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교총은 ▲집필 기준과 내용, 방법 등에 있어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교과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다양한 교과서 집필진 구성 ▲친일 및 독재 미화, 건국절 등 교육현장 여론과 배치되지 않도록 할 것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 즉각 폐기와 국정화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이날 협의회장 명의의 의견문을 통해 “국정화는 이미 의도와 진행 방식 자체가 반헌법적, 비교육적인 정당성을 잃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이준식 정책위원장도 “만약 정부가 국정화 교과서 정책을 강행할 경우 교사, 학생, 학부모 등과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교육현장에서 해당 교과서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와 네티즌들도 국정교과서의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고2 아들을 둔 학부모 P씨(49ㆍ평택)는 “내용의 좋고 나쁨과 상관 없이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국정교과서를 공식화 하는 것은 촛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교육부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으며, 네티즌들도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는 필요 없다” 등의 댓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반면 보수 단체들은 국정교과서 도입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역사는 국민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중요한 문제이고 학생들이 여러 교과서로 교육을 받으면 혼란을 느낄 수 있다”며 “국정 교과서는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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