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주변엔 쥐가 많았다. 헛간이나 마루 밑, 화장실, 텃밭 등 곳곳에서 반갑지도 않은데 자주 만났다. 시골집 천정은 쥐들의 놀이터인지, 밤이면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다.
옆에 있던 책이며 베개를 던지면 잠시 조용한 듯하다 또 찍찍거리며 돌아다녔다. 쥐 오줌에 천정도 얼룩덜룩했다. 잠자는데 어느 날 천정에서 쥐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오싹해졌다. 집 주변엔 쥐약을 놓거나 쥐덫을 놓아 죽은 쥐도 자주 접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쥐꼬리를 가져오게 하진 않았다.
1970년대 농촌엔 쥐가 많았다. 정부에서 매년 가을부터 봄까지 쥐 잡기 운동을 벌였을 정도다. 농가마다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쥐 잡는 날을 정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쥐약을 놓도록 했다. 관내 공무원들은 담당마을에 출장을 나가 쥐약 놓기를 독려했다. 며칠 후 마을 이장들은 죽은 쥐꼬리를 잘라 모아 면사무소에서 확인을 받기도 했다.
쥐 잡기 역사는 광복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이승만 정부는 1947년 12월부터 쥐 잡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신문의 쥐약 광고엔 ‘쥐 없는 가정은 명랑한 가정, 조국을 위하여 쥐를 잡자!’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온 국민이 사활을 걸듯 쥐 잡기에 나선 것은 박정희 정권때였다. 애써 농사 지은 것을 쥐가 먹어 없애니 식량안보 차원에서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했다. 동네 곳곳엔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한 집에 한 마리만 잡아도 수만 명이 먹고 산다’ 등의 구호가 적힌 선전물이 요란스럽게 나붙었다.
전국 일제 쥐 잡기 운동은 80년대에도 계속됐다. 90년대 들어 쥐 잡기 운동은 사라졌지만 쥐가 없어진 건 아니다. 농촌 환경이 바뀌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이지 쥐는 여전히 번식력 강한 동물로 우리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고양이가 늘었어도 쥐는 잘 못잡는 것 같다.
일부 농촌에서 최근 쥐 잡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쥐가 야생 조류와 함께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벼 낟알이나 콩 등 곡식이 떨어져 있는 논밭에 AI에 감염된 철새가 내려앉게 되고 이 철새의 분변을 묻힌 들쥐가 가금류 농장을 드나들면서 AI를 전파하고 있다. 이에 AI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자체들이 고육지책으로 쥐 소탕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AI 때문에 때 아닌 쥐잡기라니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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