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코트 위 전염병, 특효약보단 예방을

십수 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한 겨울의 학창시절, 수험생 생활의 고단함을 참지 못한 학생들이 하나둘 하품을 하기 시작하고, 고개를 떨어뜨릴 때면 선생님은 창문을 활짝 열곤 했다. 

오들오들 떠는 우리들에게 “하품도 전염되고 졸린 것도 전염된다”고 말씀하셨다. 돌이켜보면 한 명이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하품을 하고 싶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어쩌면 교실과 예비군 교정은 잠을 불러오는 마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농구 코트에도 전염병이 있다. ‘심판 무시’병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심판은 늘 공공의 적처럼 여겨져 왔다. 지금은 K스포츠 재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심판은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가장 무시당하고 욕을 많이 먹는 자리였다. 

물론 심판이 잘 하고 있는데 애꿎게 욕만 먹는 직업이란 의미는 아니다. 경기를 취재하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판정이 많다. 타이밍이 늦는다거나, 전반에는 넘어갔던 판정이 후반에는 ‘규칙 위반’으로 선언되어 야유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심판도 사람이다’, ‘NBA에서도 미스 콜이 나온다’라는 해명이 나온다. 이처럼 매년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프로농구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 판정에 대해 질의(를 가장한 항의)하는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심판 무시’가 전염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항의는 할 수 있다. 그런데, 항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불손함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사실, ‘1~2명만 거치면 다 아는 사이’라는 말은 체육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종목의 종사자라면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있기에 ‘감독’과 ‘선수’, ‘심판’이라는 신분만 벗어나면 다 형, 동생 같은 사이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감독은 감독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심판을 무시하고 반말을 하는 행위가 종종 TV 카메라에 잡힌다. 

억울하고 급한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프로감독과 프로선수는 팬들에게 모범이 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뱉은 막말과 쌍욕은 당장 아마추어 선수와 지도자에게 전염된다. 더 나아가 학부모에게 전염될 것이며, 팬들에게도 전염될 것이다.

 

모든 판정을 존중하자는 말은 할 수 없다. 오심이 많다는 것은 필자도 깊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심판도 사람이다’라는 말을 이 대목에서 쓰고 싶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동료이다.

 

적어도 코트 위에서, 혹은 필드 위에서 ‘동업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고 있다면, 서로간의 갖춰야 할 예의는 지키는 것이 어떨까. 물론 이는 심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무시’라는 전염병, 그것은 특효약 없이 서로의 자각만으로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닐까 싶다. 손 씻고 자기 관리 잘하는 것이 감기 예방의 첫 걸음이듯 말이다.

 

손대범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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