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필승(必勝) 코리아’는 월드컵 구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우리의 것이 됐다. 당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응원단이 합창했다. 이후 한국 축구가 가는 곳마다 울려 퍼졌다. ‘The Reds’ 티셔츠,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3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노래의 원곡, 가사 등을 둘러싼 잡음은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상징 노래인 것만은 틀림없다. 뜻도 모르는 외국인들도 덩달아 불러준다. ▶‘푸른 집 안 푸른 알약(Blue pills in Blue House).’ AP통신이 지난달 23일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푸른 집(Blue House)은 청와대, 푸른 알약(Blue pills)은 비아그라를 가리킨다. AP통신은 청와대가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와 그 복제약 360정을 구매했다고 썼다. 아프리카 순방 시 고산병 예방을 위해 구매했다는 청와대 해명도 소개했다. AFP통신은 비아그라 논란을 보도하며 ‘박 대통령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알려진 파트너도 없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최순실 게이트 초기, 국민을 참담하게 했던 외신의 단어는 ‘샤머니즘’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스캔들에는 한국의 ‘라스푸틴’에 성추문, 8선녀까지 등장한다”고 보도했고,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도 “이번 스캔들에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무속인’이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추락시키는 단어였다. 그랬던 외신에 11월 이후 더 참담한 단어가 등장했다. ‘Pills’(알약)다. AP 통신이 제목에 쓴 ‘Blue pills’는 비아그라다. ▶지난 주말, 검찰 고위관계자가 내게 물었다. “검찰이 수사 초기에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언론은 도대체 왜 이러느냐. 언제까지 저급한 얘기로 국격을 떨어뜨릴 거냐.” 그가 말한 저급한 얘기가 바로 ‘Pills’다. 비아그라, 프로포폴, 프로스카로 이어지는 보도다. 답하기 어려웠다. 그의 말이 옳았다. 외신의 주요 출처는 우리 언론보도다. 대한민국 국격 추락의 단초는 대한민국 언론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해명이 듣고 싶다. “비아그라, 프로포폴, 프로스카는 한 번도 쓴 적 없다”는 말을 듣고 싶다. “허위 보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으름장을 듣고 싶다. 그런데 그 간단한 말 한마디를 못한다. 이러니 가설(假說)이 정설(定說)로 바뀌고, 찌라시가 신문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축구장에 외국인들이 ‘필승’의 뜻을 알 리 없다. 그저 발음을 따라 부른다. 그들의 귀에 ‘오 필승 코리아’가 ‘오 필스 코리아’로 들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답답하고 참담한 현실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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