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망년회 유감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합승이었다. 합승한 손님은 망년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동창 망년회 예약을 하기 위해 중국집을 찼았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예약 액수가 적었기 때문에 주인은 모두 예약된 상태라고 거절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소박하고 조촐한 망년회를 하려면 12월 초순이나 그보다 일찍 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어제저녁에는 가까운 몇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무려 세 곳이나 찾았으나 자리가 없다고 했다. 모두 망년회 모임으로 예약됐다고 했다. 이제는 망년회를 호텔이나 괜찮은 음식점에서 하려면 한 달이나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경제가 엉망이라서 장사가 안돼 모두들 난리라고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았고, 망년회가 이렇게 사치스럽고 소비성이 짙은 ‘소비문화’로 변질돼 버린 것일까.

 

‘忘年會’는 가는 한 해의 괴로움들을 잊자는 뜻으로 연말에 가지는 모임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호화롭고 값비싼 장소와 음식 그리고 술을 즐기는 풍조로 변질되어버렸다.

이같이 망년회가 술로 괴로움을 씻어야 하는 소비문화로 치닫는다면 잊을 <忘>자가 망할<亡>자로 바뀌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건전한 의미의 망년회는 한 해의 괴로움을 잊는 <忘> 모임보다는 그 해에 못다한 일과 이루지 못한 뜻을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계획으로 잘 이루어 내기를 바라는 <望> 모임이 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忘年會’는 희망을 향한 ‘望年會’의 내포해야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나라 도시의 대학 주변에는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리는 온통 술집, 여관, 사우나, 식당, 쇼핑 등 1차원적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분위기가 도시 대학가를 물들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화적이고 학구적인 분위기는 자꾸만 뒷걸음치고, 마시고 먹고 즐기는 소비성향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풍조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고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우선 그지역 문화인들이라도 새바람을 일으켜 문화를 새롭게 일으켜 새우겠다는 각오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윤옥순 골드창작스튜디오·갤러리GL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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