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지사는 공적으로 말하고
現 지사는 열정으로 말하고
변함없는 도지사 평가 기준
-위라하디락사 부사장이 1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파주 월롱에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LG필립스LCD 파주단지는 여러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5년 안에 준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가, 경기도에서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것을 보더니 4년으로 줄여달라고 했고, 곧 3년 반으로 단축해 줄 것을 요구했다. IT 산업이라는 게 시간 싸움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나는 모든 행정 지원을 해주도록 했다.
문화재 지표 조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려 5천 평이나 됐다. 땅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적어도 6개월은 지연될 터였다. 산업단지 개발을 담당하는 경기지방공사 오국환 사장에게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대형 비닐하우스 텐트를 치고 온풍기를 돌려서 땅이 얼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런데 뭐가 또 문제란 말입니까.” “돈이 많이 듭니다.” “얼마나 듭니까.” “10억도 더 들 겁니다.” “합시다.”
마지막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중앙 정부의 규제였다. 노무현 정부의 기본 입장 때문에 정부는 단지 조성에 기본적으로 반대했다. “이런 경우에 산업 입지를 막으면 우리 첨단 산업의 갈 길은 어디며 일자리는 어디서 만들 겁니까.” 난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훗날) LG필립스LCD 파주단지 준공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보면서 원고에 없는 인사말을 했다. “손 지사님, 이제 만족하십니까.”-
현장 행정을 회상한 부분도 있다. 주로 첨단기업과 중소기업 지원 얘기다.
-아내가 ‘무허가 지역에 있는 공장 앞길을 땅 주인이 막아 공장 진입에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를 보았다고 한다. 그 공장으로 갔다. 화성시 팔탄면이었다. 막무가내인 땅 주인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인근 땅을 경기도가 매입함으로써 진입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중소기업을 위해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도로 내주고 전기, 가스, 상ㆍ하수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도의 가장 흔한 일이 되었다. 도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한석규 경제투자관리실장이 보고했다. “어제 ○○지역에 있는 공장을 방문했는데요, 길을 내달라고 해서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니가 도지사냐, 니 맘대로 내준다고 말하게.” 대견한 마음이 들어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지사님이 해주라고 하실 건데요, 뭐.” 경기도 공무원이 지사의 행정 철학과 방침을 몸으로 터득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웠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도 고백했는데, 삼성에 매각한 도유지(道有地) 얘기다.
-경제투자실장이 삼성전자에서 경기도 건설본부 부지를 달라고 한다면서 약간 코웃음 치는 듯한 뉘앙스로 보고했다. 나는 삼성 측에서 무슨 용도로 쓰려는 거냐고 물었고, 경제투자실장은 R&D 시설로 쓰려고 한다더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팔면 되겠네요.” “네? 뭐라고요? 지사님, 특혜 시비는 어쩌시려고요.” “특혜는 무슨 특혜, 먹지만 않으면 될 거 아녜요.” 이렇게 해서 삼성전자는 그 자리에 연구소를 세웠다.-
‘나의 목민심서-강진일기’다. 저자 손학규씨는 대권 후보다. 젊은 시절 독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다. 보수 정당 내에선 40대 선두주자였다. 당시 최연소 장관으로 복지부도 관장했다. 통합된 야당의 대표까지 했다. 지금도 여전히 대권 후보다. 그가 칩거 2년 만에 책을 냈다. 많은 이들이 내용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내용은 의외다. 투쟁 얘기도, 정당 얘기도, 대통령 얘기도 아니다. 경기지사 시절 얘기가 태반이다.
지사 때 이미 대권 후보였다. 충청도와 상생 협약 등 대권 행보도 있었다. 하지만 ‘대권 행보’ 얘기는 다 뺐다. 오롯이 도정을 위해 뛰었던 기억만 추려 썼다. 그게 가장 자랑스러운 얘기라 여긴 듯하다. 도정 실적으로 국가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듯하다. 만약 그런 출간 의도였다면, ‘강진 일기’는 성공한 책이다. 책을 선물하는 ‘정 부지사’도 “책을 읽으니 그때 한 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는 후기(後記)를 전하니 말이다.
맞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지사의 길은 도정이다. 전(前) 지사는 지나간 도정을 회상할 때 가장 존경스러운 것이고, 현(現) 지사는 눈앞의 도정을 수행할 때 가장 존경스러운 것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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