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판급 대기업들로 구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약칭 전경련)는 1961년 설립됐다. 5·16 쿠데타 직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 함께 한국경제인협회를 만들었다.
이 회장이 초대회장을 맡았다. 설립 배경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대기업들이 공동의 구심점을 필요로 해 만든 단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당시 부정축재 문제로 단죄를 받을 처지에 놓인 대기업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조한 단체라는 시각도 있다.
이후 1968년 주요 민간기업, 금융회사,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회원을 늘리면서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명칭도 현재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바꿨다. 전경련은 정관에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데 설립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경련의 회원사 수는 600여 개다. 법적으로는 비영리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다. 회원 가입은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회원사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전경련은 지난 55년간 국가경제 성장에 나름 기여를 했다. 기업 애로사항을 호소하거나 정책을 개발·제안하는 경제단체 본연의 활동 외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주도적 역할도 했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은 국가 경제정책에 참여는 커녕 기업을 대변하는 기본적인 역할조차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경유착의 통로, 부패한 권력을 위한 모금창구 역할을 하면서 망가져 버렸다.
전경련은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모금했고, 이후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에 연루됐다. 그때마다 사과와 윤리선언 등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또다시 ‘최순실 국정농단’의 앞잡이 역할을 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전경련 해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주 열린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전경련 해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밝혔고, 다른 그룹 회장들도 탈퇴 의사가 있다고 했다. 해체 위기에 놓인 전경련은 이번에 전면 쇄신을 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겉치레 개혁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환골탈태 아니면 해체, 전경련이 가야 할 길은 둘 중 하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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