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는 27년 복역 끝에 대통령이 되어 큰 행사, 이를테면 자선기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에도 ‘46664 콘서트’라고 이름 붙였으며 특히 정치적 행사에 이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통합’과 ‘화해’를 강조하는 의미가 되었다. 심지어 만델라는 국기에 조차 중앙에 Y자를 넣었는데 이 역시 백인과 흑인의 통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혹독한 흑인 탄압에 고통을 겪었고 27년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음에도 통합과 화해를 외쳤고 그래서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
물론 그로 인해 흑인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으나 그때마다 만델라는 이렇게 그들을 달랬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정책)는 종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즉 흑백분리주의는 남아프리카에서 반인륜적 범죄가 일상화될 만큼 혹독했다. 흑인은 케이프타운을 비롯해 도시에 진입할 수 없었고 공중화장실이나 공원 벤치도 이용할 수 없었으며 인구 9%의 백인이 79.2%의 흑인을 노예처럼 다루었다. 오죽했으면 1954년 FIFA가 남아프리카를 제명해버려 월드컵에도 출전을 못하게 했을까.
이처럼 혹독한 흑백분리 정책을 뒤집은 만델라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국가의 통합’에서 찾으려 했다. 통합-그것을 국가를 유지하는 최선의 가치로 생각한 것이다.
만델라 대통령 말고도 ‘통합’을 정책의 최고 가치로 내세운 사람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다. 흔히 링컨의 위대함은 노예해방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역사는 그가 국가의 ‘통합’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오히려 그는 “나로서는 노예들을 해방시키게 되면 아프리카나 리베리아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만일 내가 한 명의 노예를 풀어주지 않고 우리 연방을 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만일 노예를 풀어주어야 건질 수 있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니까 링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분열된 미국의 통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북전쟁의 끝, 그 마지막 항복을 할 때 북부군의 그랜트 장군으로 하여금 남부군을 온전히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면서 그들의 장비품도 몰수하지 말고 타고온 말까지 함께 돌아가게 했다. 비록 총을 겨누고 싸웠지만 인간적인 자존심을 배려해 준 것이다.
그렇다. ‘통합’은 독선이 아니라 상대방의 가치와 자존심을 존중해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순실 게이트’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 문제는 이 상태를 정치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요리로 접시에 담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마치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 정찰에 나섰던 황윤길, 김성일이 그들의 소속 당에 따라 처방이 달랐던 것과 같다. 그 피해는 우리 민족의 씻을 수 없는 한이 되지 않았던가.
이제 이 땅에도 진정 ‘통합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 노사문제 갈등, 빈부 격차로 인한 금수저 흙수저 갈등, 교육 현장에서의 갈등, 세대간 갈등…. 이것들을 녹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절실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점점 국제적 고아로 밀려날 것이고 세계사는 대한민국을 몽고처럼 한때 반짝이다 사라진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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