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군 침략 맞서… 서해안 지킨 조선의 명장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타고 평양부중까지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격분한 민중들에 의해 불을 지른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이 군함 4척에 1천130명의 병력을 이끌고 1871년 4월 3일 남양 앞바다에 나타나 통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신미양요는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외면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배경으로 우방 미국과 최초의 무력충돌을 일으킨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때 어재연은 강화영 진무중군(鎭撫中軍)이 돼 침공한 미국함대의 병력을 막게 되었다.
당시 조선군 243명이 전사한 치열한 전투에서 주역인 어재연장군과 어재순(魚在淳) 형제의 살신보국(殺身報國)의 정신은 나라사랑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율면 산성리에 있는 생가는 이천시와 그 후손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생가 언덕위에 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당인 충장사(忠壯祠)가 있다. 이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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