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계란 선물세트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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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이 ‘금란(金卵)’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싸졌다. 물량 부족에 가격 폭등 현상이 벌어지면서 SNS엔 ‘비빔밥에 ‘화룡점정’이랄 수 있는 계란을 넣어주지 않아 황당했다’는 사연부터,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었다’고 자랑하는 인증 사진이 게재되고 있다. ‘라면에 계란을 넣어먹는 것도 사치가 됐다’는 푸념도 있고, ‘계란이 비싸 메추리알을 넣어 먹어야겠다’는 하소연도 있다. 대형 제빵업체에선 일부 품목의 생산을 중단했다. 계란 부족과 가격 고공행진은 계란을 수입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귀한 몸’을 입증이라도 하듯 비행기로 모셔왔다.

계란은 서민들에게 가장 저렴한 단백질 식품이다. 영양이 풍부해 완전식품에 가깝다. 명절에도 가장 많이 쓰이는 식재료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계란 10알이 든 짚으로 만든 계란 꾸러미는 최고의 명절 선물 중 하나였다. 1950년대 6ㆍ25전쟁 후 계란은 닭고기ㆍ돼지고기ㆍ찹쌀과 함께 설 선물 4대 인기품목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계란의 가치는 돼지고기 한 근과 차이가 없었다. 당시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책자에는 1967년 계란 한 꾸러미 가격이 110원으로 기록돼 있다. 돼지고기 한 근(600g)은 120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민 가정에선 생일이나 잔칫날, 소풍날이라야 계란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1962년 이화여대 기숙사를 탐방한 ‘처녀들만의 보금자리’라는 신문 기사에선 ‘기숙사 식당에서 매일 하나씩의 달걀 프라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소개했다. 같은 해 가을 계란 공급이 불안정해 품귀 사태를 빚자 일부 상인이 멋대로 값을 올려 받아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는 보도(조선일보 9월 5일자)도 있었다. 1968년 6월 1일 서울 서대문의 10층 건물에 문을 연 ‘뉴 슈퍼 마키트’의 개업 행사에서 당대 인기 코미디언인 서영춘·백금녀 등이 고객들에게 나눠준 선물은 1인당 계란 1개씩이었다.

궁핍한 시대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계란 선물세트가 60여 년 만에 명절 선물로 다시 등장했다. 친환경 1+등급의 계란 선물세트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선물 판매대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동네 마트에선 3만원이상 설 선물을 사면 계란 세트(10개)를 덤으로 주며 고객을 유혹하고, 개업한 식당도 계란 세트를 사은품으로 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정유년 닭띠 해라서 인가, 계란이 다른 어느 해 보다 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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