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김영란법 ‘100일 천하’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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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일정한 질서를 포함한다. 이 질서가 있을 때 법적 안정성이 갖춰진다. 사회적 정의(正義)보다도 법의 안정성은 앞선다. 일단 법적 안정성이 확보된 뒤, 잠재돼 있던 정의가 드러난다. 법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새로운 법질서를 형성할 것인가의 판단은 그때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정의에 어긋났다. 하지만, 법은 그를 사형시켰다. 그가 희생되며 남긴 “악법도 법”이란 외침이 법의 안정성을 설명하는 더 없는 법언(法諺)이 됐다. ▶법의 안정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있다. 그중에 경직성(硬直性)이 있다. 법을 담당하는 기관의 결정은 임의로 취소ㆍ변경되어서는 안 된다. 한 번 제정된 법률을 바꾸는 것도 헌법상 절차와 위헌 심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형법은 1953년 간통죄를 규정했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폐지라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62년 걸렸다. 시행령은 법을 적용하는 구체적 지침이다. ‘안정성’이란 기본 정신에서 모법(母法)과 전혀 다르지 않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바뀐다.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 허용 기준이다. 애초 3ㆍ5ㆍ10에서 5ㆍ5ㆍ10으로 높였다. 음식물 접대 한도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액 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정부가 판단해서다. ‘3월 초부터 시행한다’며 일정도 공개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접대 제한이다. 그 핵심을 정한 기준이 ‘3ㆍ5ㆍ10’이다. 이 시행령의 개정은 사실상 김영란법의 개정이다. ▶간통죄 위헌 주장은 수십 년간 있었다. 실제 개정까지는 62년 걸렸다. 김영란법도 출발부터 위헌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대로 시행령이 바뀌었다. 개정이 예고된 3월을 기준으로 하면 5개월 만의 개정이다. 법률의 개정 예고는 현실에서 미리 적용되는 특징이 있다. 현재의 ‘3ㆍ5ㆍ10’ 기준은 이미 설을 전후해 효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를 기준 삼으면 김영란법은 100일 만에 바뀐 법이다. ‘빨리 바뀐 법률’로 가히 기록적이다. ▶법 시행 초기, 적지 않은 이들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말했다. ‘나아질 것이라는 게 시행령 완화라면 애초부터 잘못된 법률이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모든 것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화훼 농가, 농ㆍ축산 농가, 외식업계의 타격은 나아지지 않았다. 법-시행령-은 석 달을 못 버티고 한도를 늘려 잡았다. 법이 가져야 할 기본적 가치, 안정성을 잃었다. 이런데도 김영란법 논란을 ‘깨끗한 사회’ 대 ‘더러운 사회’로만 볼 것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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