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개헌과 복잡한 달걀 깨기 장치

▲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개헌이 주요 의제가 되고 있다. 국회에는 개헌특위가 꾸려지고 대권 후보들 간에도 방향과 시기를 둘러싸고 논쟁이 되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정치권은 물론 학계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새로운 시대의식과 변화된 국민적 요구라는 새 술을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로써, 정치인들이 권력을 위임해 준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률 개정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개헌만이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일까.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승자독식과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분권과 협치, 사회경제적으로는 고용과 임금격차 해소 등 부의 원천적 재분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들은 개헌이 아닌 법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백만 국민의 소망과 목소리가 담긴 투표 결과를 일순간에 사표로 만들어 버리는 현행 단순소선거구제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개혁 과제이다. 

▲
개헌을 한다면 촛불 민심을 반영하는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주의를 개헌에 담아야 하지만 그 이전에 선거법부터 바꾸는 것이 순리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권에 제안했던 권역별 비례 대표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개헌에 버금가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개헌논의가 그 당위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동의와 동력을 잘 얻지 못하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눈앞의 가까운 길을 외면한 채 멀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을 그대로 둔 어떠한 형태의 권력구조 개편 중심의 개헌론도 국민들에게는 기득권 집단의 권력 나눠먹기로 비칠 뿐이다.

이것은 달걀 깨기나 등 긁기와 같은 매우 손쉬운 일을 일부러 복잡한 에너지 변환장치를 통해 어럽게 수행하는 ‘루브 골드버그 장치’를 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 달걀 깨기와 등 긁기는 장치가 아니라 의지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양근서 경기도 연정위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