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새누리 당명 개정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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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黨名)은 정당의 철학과 이념을 담은 간판이다. 그러므로 당명을 정할때는 당의 정체성과 지지자들을 고려한다. 당명 개정이 사실상 해당 정당의 해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100년 넘게 양당제를 유지해온 미국의 경우 ‘공화당=보수, 민주당=진보’ 이미지가 정착돼 있다.

이 때문에 미 공화당은 자당 소속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라는 미 정치사상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렸지만 당명을 바꾸지 않았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남북전쟁에서 남부를 대변했던 민주당측이 전쟁에서 패했지만 당명을 유지했다.

 

반면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당명은 수시로 변했다. 당명의 평균 수명이 고작 2.6년이다. 가장 길게 유지된 당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창당한 민주공화당(1963~1980년)으로 17년 동안 불렸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만들어진 한나라당(1997~2012년)이 가장 오래 이름을 이어갔지만 14년에 불과했다.

 

이처럼 정당명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정치 지형이 재편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정당명은 대선을 전후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국민승리 21’, 2002년 ‘국민통합21’,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대선 직전 만들어졌다가 몇 달도 안돼 사라졌다.

 

새누리당이 5년 만에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비상대책위에서 당명 후보로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 등 3가지로 최종 압축했다. 이중 ‘보수의 힘’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종 단일안은 조만간 전국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새누리당은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이래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의 이름을 거쳤다. 새누리당이란 당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2년 2월 13일 당 전국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는 것은 국정농단 사태의 사실상 공범인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전면 쇄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당명 개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죽은 시신에 화장한다고 다시 살아날 리 없다”면서 “새누리의 당명 개정은 최순실의 개명과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당명을 자주 바꾸기보다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이고 실천이다. 간판만 바꿔 다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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