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KBL, 어제와 내일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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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야구박물관은 일본야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야구에 ‘야’도 모르는 필자조차 넋 놓고 구경했다. 야구의 시작부터 가장 화려했던 장면을 팬들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오래된 방망이와 유니폼, 기록지 등을 보고 있노라면, 정성에 한 번, 세심함에 두 번 놀란다. 캐나다에 있는 아이스하키 명예의 전당도 그렇다. 

역대 챔피언, 국제대회 성적은 물론이고 시대별로 사용된 용품 발전사까지 정리되어 있다. 심지어 일명 ‘덕후’들이 시대별로 열광했던 팬 용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퇴장하는 길에는 의류, 서적 등이 팬들을 유혹한다. ‘역사 챙기기’가 미국의 장기라고들 하지만, 두 나라의 정성도 이처럼 만만치가 않다.

 

2월 1일, 프로농구 20주년 행사가 막내렸다. 1997년 2월 1일은 프로농구가 첫 경기를 치른 날이었는데, 이를 기념해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고 사진전이 열렸으며 리셉션에서는 그 당시 출범 주역들이 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었다. 20주년을 위해 힘들게 모은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고 자랑할지에 대한 추가 논의는 없었다. 지방 팬들에게는 감흥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랑스러워서 행사까지 했다면, 발전시키고 보존할 생각도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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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는 구단 자체적으로도 ‘우승’뿐 아니라 그 역사를 끔찍할 정도로 아낀다. 뉴욕 닉스의 홈구장 메디슨 스퀘어가든에는 1970년대 우승 당시 레드 홀츠먼이 결승전에서 사용한 메모지와, 우승을 기념하여 뉴욕 시장이 보낸 기념공문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NBA는 매년 올스타전마다 십수 년 전 사용된 농구공과 장비를 전시한다. 그리고 영광의 시대를 이끈 레전드를 팬들 기억 속에서 소환한다. 우리 농구도 아픈 날도 많았지만 잔칫집 같던 날도 많았다. 

연장전을 5번이나 간 날도 있고, 응원팀 우승을 위해 야외거리 응원도 했다. 나는 그 역사들을 그저 액자 속에 가둬둔 채 형식적인 축하행사와 덕담만 오고 간 것이 속상하다. 팬들이 기억하는 건 총재의 인사말이 아니라 그 경기를 치른 선수들일 텐데 말이다. 더 속상한 것은 25주년, 30주년이 오기 전까지는 이 역사들이 그리 조명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늦지 않았다.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한다. 기념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대표팀 소집할 전용체육관 하나 없는 처지에 기념관은 사치일 수 있다. 그래도 일단 손에 걸리는 모든 자료를 수집해 다 같이 기억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은 있어야 할 것이다. 무려 20년이다. 20살이면 자기소개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며 어떻게 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정리할 수 있는 나이다. KBL이 지금 딱 그렇다.

 

손대범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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