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김문수 …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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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만의 정치-소신 있는 배신
탄핵 반대로 보수 숨통 트여
결국 촛불 속에서 산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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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지사를 하던 때였다. 인터뷰 중 이렇게 물었다. ‘민자당 입당이 배신의 역사 아닌가.’ 1992년 민중당 소속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뛰었다. 그리고 2년 뒤 민자당에 입당했다. 5공 세력이 지분을 갖고 있던 보수집권당이었다. 재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에겐 어지간히 이골이 났을법한 질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되레 질문자를 당황케 했다. “배신 맞다. 대한민국을 위해서였다. 후배들도 빨리 배신해야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경기도가 무상급식 회오리에 휩싸였다. 2009년 등장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던진 이슈였다. 표심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이 총출동했다. 포퓰리즘, 예산파행 등의 논리로 공격했다. 이때 가장 강력한 표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무상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그즈음, 저녁밥 자리에서 김 교육감이 말했다. “김 지사는 한번 하면 끝까지 간다. 학생 운동을 할 때도 저랬다. 운동권 선배들조차 우려할 정도로 극좌까지 갔었다.”

그랬다. 그게 김문수였다. 한번 시작하면 극단으로 갔다. 더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면 다시 돌아섰다. 그리곤 다시 반대쪽 끝을 향해 달렸다. 극단적 노동자당에서 극단적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학생운동 선배와의 조우에도 인정사정없었다. 40년 전 우정을 점친 언론의 예상을 무색게 했다. 선배 김상곤 공격의 맨 앞에 섰고, 가장 격렬하게 싸웠다. 꺼내 든 무기도 하필 ‘이념’이었다. 40년 전 함께 공부했을 그 ‘사회주의’로, 바로 그 선배를 몰아세웠다.

그 김문수가 다시 한 번 배신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사익을 취하지 않았으며, 의원 시절에도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그는 탄핵과 출당의 편에 있었다. 2016년 11월 13일, 새누리당 비상시국위가 대통령 탄핵과 출당을 요구했다. 그 시국위의 공동대표가 김문수였다. 3개월 만에 돌아선 배신이다. 엊그제 동료 하태경 의원이 ‘간신 돌격대’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문수는 그만의 소신을 얘기한다. “많은 고민을 했고 양심에 따라 결심했다”(정규재 TV 인터뷰 중에서). 그러면서 계속 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발언은 점점 극단으로 가는 중이다. 비난하는 여론에 ‘앞으로 태극기 집회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맞섰다. 그래도 비난하자 ‘촛불 집회 주도 세력은 골수 좌파’라며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근혜 살리기’에서 ‘촛불집회 공격’으로 넘어갔다. 늘 상상을 넘어 극단까지 달리던 그답다.

김문수는 이기는 정치인이었다. 적어도 19대 총선까지 그랬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 두 번의 도지사 선거를 모두 이겼다. 이런 전승(全勝)의 신화가 김문수식 ‘배신의 철학’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 철학은 유효해 보인다. 정치공학적으론 덧셈이다. 주변에 머물던 그를 무대 복판으로 이동시켰다. 질식하던 보수에겐 시원한 숨구멍이 됐다. “탄핵이 인용되면 (되레)민심이 반전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에선 정치 9단의 노련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안타까운 게 있다. 그에게서 멀어져가는 또 다른 가치다. 2년 만에 좌익과 우익을 오가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40년 지기를 몰아세우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다수가 아니라는 길을 소신이라며 고집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아마도 일관된 이념을 지키는 대통령, 인간적 정서를 가진 대통령, 통상의 상식을 따르는 대통령을 더 원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투사 김문수와 대통령 김문수를 구분해 평하기 시작하는 이유다.

도지사 시절, 그가 내 건 문구가 있다. ‘청렴영생 부패즉사’. 실제로 그는 깨끗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패로 파탄 났다. 그래서 저마다 깨끗한 대한민국을 말한다. 하지만, 삶으로 청렴을 대변할 이는 많지 않다. 그 귀하디 귀한 사람이 김문수였다. 그래서 안타깝다. 촛불 속으로 뛰어든 모습이 안타깝고, 그 속에 홀로 타서 재로 남을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이 역시 ‘배신의 철학’을 ‘승리의 공식’으로 믿어온 그가 고집하는 길이라면 할 말은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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