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그룹인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바이오분야에 5천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저커버그와 부인 프리실라 챈은 지난해 9월 질병의 치료·예방·통제를 위해 6억달러를 투자해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라는 비영리 의료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서는 인체 주요 기관을 움직이는 세포 지도 ‘셀 아틀라스’를 제작하고, 에이즈·지카·에볼라·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에 대해 연구한다.
연구소 측은 지난 8일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스탠퍼드대 등의 연구자 47명에게 향후 5년간 연구주제나 분야,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총 5천만달러(약 573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과학, 생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은 1인당 최대 150만달러(약 17억원)를 지원받으면서 조건 없이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질병 퇴치를 위한 연구에 엄청난 금액을 지원하면서 연구자들이 마음껏 창의성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실패해도 좋다. 가장 위험하고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하라”고 말했다. 돈을 주는 대신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연구자를 통제하는 통상적인 후원 방식과 달라, “저커버그는 창의적 기업인답게 기부 방식도 창의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저커버그 부부는 2015년 12월 딸 맥스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450억달러(약 52조원)에 해당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살아있을 때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약속의 이행을 위해 지난해 9월 인류의 모든 질병을 금세기 말까지 치료ㆍ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10년간 30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에 5천만달러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저커버그의 과감한 기부와 그 방식이 부럽다. 인류를 위해 통 큰 기부를 하는 CEO,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맘껏 연구에 몰두하라는 열린 사고가 그렇다. 우리나라였다면 주제, 기간, 연구방식 등을 까다롭게 정해 연구자를 공모한 뒤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일정기간 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중단하거나 연구비 환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현실이 이러니 연구 성과에는 관심이 없고 정부 지원금을 적당히 나눠먹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커버그의 기부가 국내의 열악한 기초과학 연구 환경과 극명히 대조돼 더욱 부럽게 다가온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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