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지공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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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노인들은 딱히 할 일이 없다. 하루가 길고 무료하다.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더 그렇다. 하루를 또 어찌 보낼까 궁리하다 종종 지하철을 탄다.

서울쪽으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도 가고, 아래로는 온양온천에도 간다. 만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으니 교통비 부담은 없다. 이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들을 ‘지공족(族)’이라 부른다. 장애인·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노인이다.

 

지난해 전국 지하철 승객 24억2천만명(중복 집계) 가운데 4억1천만명(17.0%)은 무료로 개찰구를 통과했다. 지공족때문에 지하철 운영기관은 매년 수천억원의 무임 수송 손실을 짊어져 울상이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2011년 1천437억원이던 무임 수송 손실이 2015년 1천894억원으로 31.8% 증가했다. 전국 지하철의 손실액은 2015년 기준 4천939억원으로, 당기순손실 중 61.2%가 무임 수송 탓에 발생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전국의 지하철 운영사 16개 기관이 “무임승차 비용을 중앙정부가 보전하라”며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코레일에만 무임 수송 비용의 70%를 지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이들 기관은 최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국가보훈처 등에 관련법 개정안 통과와 재정 지원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지하철 운영기관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 등이 도시철도(지하철)를 무료로 타는 것은 노인복지법에 따른 국가의 보편적 복지정책이니,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코레일은 수도권 지하철 1·3·4호선의 일부 구간(서울 외곽지역 노선)을 담당하는데 무임 수송 비용의 약 70%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국가공기업(코레일)은 지원하고 지방공기업(각 지하철 운영사)은 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차별이다.

 

지하철 손실의 대안으로 지공족을 만 70세로 상향하든지, 현재 100% 면제를 50% 면제로 조정하자는 말도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소일거리로 지하철을 타는데 이를 제한하면 운동 부족과 외로움 등으로 병원치레가 잦아져 더 손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무임수송에 따른 손실을 도시철도와 지자체에만 떠넘겨선 안된다. 노인들이 지공족 때문에 지하철 적자폭이 늘어 골칫거리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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