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졸업 유예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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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저마다의 목표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출발선에 서는 것이라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는 10%를 넘어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이 대학 졸업식 풍경을 바꾸고 있다. 졸업식 날 동기끼리 모여 사회 진출을 축하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졸업식 참석을 기피하거나, 참석하더라도 가족 없이 혼자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나 홀로 졸업식’이 늘고 있다. 

졸업 전에 셀카봉을 들고 와서 학교 곳곳을 배경으로 혼자 기념사진을 찍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취업을 못한 상태에서 졸업을 하게 돼 부모님이나 친구들 볼 면목이 없어서란다. 친한 친구 몇 명이 ‘우정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졸업식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졸업 유예는 사실상 졸업 요건을 충족한 재학생이 해당 학기에 졸업하지 않고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루는 것으로 ‘졸업 연기’ ‘졸업 유보’ ‘계속 수학’ 등으로도 불린다. 법적 근거나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많은 대학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졸업유예제를 도입하고 있다.

 

졸업 학점을 다 이수하고도 자발적ㆍ고의적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NG(No Graduation)족, 노대딩(노땅 대학생), 대오(대학 오학년) 등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들은 정규 학기를 다 채우고도 학교를 더 다니기 위해서 최소 한 과목 이상을 듣는 NG족도 있지만 과목당 50만~6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이런저런 편법을 이용해 등록금을 안 내면서 졸업만 유예하는 학생들도 많다. 영어 성적이나 졸업 논문 등 졸업 요건을 일부러 채우지 않는 식이다.

 

NG족은 유령과 같은 존재다. 대학 5학년생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학교에서 ‘없는 존재’가 된다. 졸업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수업 1~2과목만 신청하니 선·후배와 동기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으니 의도치 않게 숨어 지내는 모양새가 된다. 재학생들과 종종 갈등도 발생한다. NG족이 도서관 자리를 죄다 차지해 자리다 없다고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씁쓸하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나마 저소득층은 비용 부담에 졸업 유예도 맘대로 못한다. 졸업 유예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해결할 방법은 일자리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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