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파이(π) 데이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2월 14일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다. 성 발렌티누스 사제가 순교한 날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는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풍습이 초콜릿 회사의 상술과 맞아떨어져 여성이 평소 마음을 줬던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 됐다.

 

상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월 14일을 화이트데이라 이름 붙여 이번엔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을 만들었다. 일본의 제과회사에서 시작했다는데 얄팍한 상술이 기념일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요란스럽다. 올해 화이트데이에는 사탕보다 고급 초콜릿이나 젤리가 인기다. 여기에 선물까지 챙기느라 주머니가 얇은 청춘들은 ○○데이가 괴롭기까지 하다.

 

수학자들은 3월 14일을 ‘파이(π) 데이’라 한다. 파이(π)는 원주율을 뜻하는데 그리스어로 둘레를 뜻하는 단어(π ε ρ ι μ ε τ ρ ο ζ)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원주율은 원 둘레의 길이를 지름으로 나눈 값으로 3.1415926535…처럼 불규칙적인 소수점 아래 값이 무한하게 이어진다.

 

파이 데이는 미국의 수학동아리 ‘π-Club’이 3월 14일 오후 1시 59분 26초에 모여 파이를 먹으며 기념한 것이 계기가 돼 세계 각국의 수학과나 수학관련 단체 등에서도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π값 외우기, π에 나타나는 숫자에서 생일 찾기 같은 게임과 원과 관련된 놀이기구의 길이, 넓이, 부피 구하기 대회 등 다양하다.

 

거대한 π값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2005년 10월 20일 일본 도쿄대 가네다 교수는 컴퓨터를 601시간 56분 사용해 소수점 1,241,100,000,000 자리의 π값을 구했다. 잘 가늠이 되진 않지만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π값을 노래로 만든 ‘파이 송(Pi Song)’도 있다. π값 외우기 도전도 계속된다. 현재 기네스 기록은 2005년 중국의 한 대학생이 24시간 동안 6만7천890자리까지 외운 것이다.

 

파이 데이는 우리나라에선 2000년을 전후해 포항공대의 수학연구 동아리를 비롯해 수학관련 단체나 교사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나 지금까지 단순한 행사에 머물러 확산되지 못했다. 올해는 교육부가 ‘수학과 친해지는 날’로 지정해 해당 주간에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권장했다. π값 외우기, π값을 랩으로 불러보기 등을 하며 청소년들이 수학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파이 한조각 곁들이면 더 좋고.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