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또 하나의 재판, 불복(不服) 프레임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기자페이지

국정원 선거 개입 특위가 끝났다. 국정원 직원에 의한 부당한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 결과를 들고 야당 소속 위원들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청와대 측이 제지했고, 위원들은 공개서한 발표로 대신했다. 그때 발표한 항의서한 중 이런 부분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은 바로 공정한 선거에 있다. 3ㆍ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반면 교사로 삼길 바란다.”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 역공에 나섰다. 윤상현 당시 원내수석 부대표가 앞장섰다. “지난 대선을 3ㆍ15 부정선거에 빗대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민 선택을 왜곡하고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면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선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2012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인가.” 이른바 대선 불복 프레임이었다. 민주당의 답변이 궁색했다. “불복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전혀 다른 ‘불복 프레임’이 재연되고 있다.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이다. 사저로 돌아오던 박 전 대통령이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국민에 송구스럽다’면서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라고 했다. 언론은 이를 ‘사실상의 불복’이라고 해석했다. 그 입장을 덧칠해 친박 김진태 의원이 이어받았다. “헌재의 결정에 동의할 의무가 없다.” 야권은 일제히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이냐’며 역공에 나섰다. ▶이번에는 여권의 답변이 궁색하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승복하겠다는 것이 저희 당의 확고한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결과 불복의 의미인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며 논리 탈출의 여지를 남겼다. 그의 말에서 3년 전 민주당의 모습을 본다. ‘국정원 불법 개입’은 수 없이 말하면서 ‘선거 불복’은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던 모습이다. ▶법원 판결은 3심제다. 헌재 재판은 단심제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에는 또 다른 심급(審級)이 있는 듯 보인다. 3심-대법원 판결-이 끝났어도 ‘승복할 것인가’를 묻는다. 헌재 결정이 난 뒤에도 ‘불복하는 것이냐’고 따진다. 3년 전에는 민주당이 여기에 몰렸고, 지금은 박 전 대통령 측이 여기에 몰리고 있다. 법체계에는 없는 이 ‘심급’. 어쩌면 정치인에겐 대법원ㆍ헌재보다 무서운 ‘최종심’일 수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