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대선주자의 ‘화수분’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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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책만 보는 샌님이라 명절이 돼도 쌀 한 톨을 구해오지 못했다. 아내가 도둑질이라도 해 오라 하니 하는 수 없이 남의 벼를 훔치러 갔지만 망설일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친 천둥소리에 놀라 달아나다 발에 걸리는 뚝배기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을 가져와 집에 남아 있던 한 줌의 쌀을 넣어뒀는데, 금세 쌀이 뚝배기에 가득 찼다. 꺼내도 꺼내도 재물이 나온다는 ‘화수분’에 얽힌 설화다. 

▶화수분은 욕심을 부리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뚝배기로 부자가 된 남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뚝배기는 혼자만 사용하고 아내에게는 보여주지도 말라고 한다. 벽장에 감춰둔 뚝배기의 정체를 부인이 알면서 산통이 깨진다. 오랜만에 친정을 찾은 딸에게 뚝배기를 빌려준 것이다. 딸이 뚝배기에 쌀을 넣었지만 몇 날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효능이 사라진 것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보가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대가로 받은 박씨를 심어 거둔 열매를 쪼갠다. 박속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이었는데 박 통 속에서 쌀과 돈이 끝이 없이 나온다. 욕심 많은 형 놀보는 아우를 샘내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박씨를 얻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박 통에서 나온 건 괴물들이었고 있던 재물마저도 빼앗긴다. 

▶조기 대선에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후보들과 이참에 줄이라도 잘 서서 권력의 단맛을 보겠다는 사람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짧은 기간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203만 명, 22조 6천억 원의 채무를 갚아 주겠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대기업 임금의 80% 수준을 보장해 주겠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전업주부에게도 출산수당을 주겠다’라는 등 솔깃한 공약들이 줄을 잇는다. 

▶공약만 봐서는 대선 후보마다 재물이 쏟아지는 보물단지 하나씩을 가진 모양새다. 단지에서 나오게 될 돈은 국민이 낸 세금일 테니 끝도 없이 나올 리 만무하다. 설화처럼 국민에게 풍족한 삶은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답게 살 정도는 해주겠다는 착함에 하늘이 감동해 화수분을 내려줄 리도 없다. 검증 없이 남발한 선심성 공약에 자칫 나라 살림마저 거덜 날까 걱정이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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