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희롱당하는 보수표-‘홍·찍·문’

당락 결정할 종속변수 전락
평생 몇 번 남지 않은 대선
소신 투표해야 스스로 떳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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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ㆍ일전은 늘 박빙이다. 모두가 TV 앞으로 모인다. ‘푼돈 내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런 사람 꼭 있다. ‘일본이 이긴다’에 거는 사람이다. 배당률(?)을 노린 선택이다. 하지만 곧 후회한다. 역시 심장은 돈이 아니라 진심으로 움직인다. 한국이 득점하면 터질 듯 가빠지고, 실점하면 죽은 듯 멈춰 선다. 혹시 일본이 이겨 상금을 챙기더라도 좋을 리 없다. 도박(?)은 대개 이런 교훈으로 끝난다. ‘다시는 맘 없는 곳에 걸지 말자.’

대선(大選)도 한ㆍ일전만큼이나 흥미롭다. 5월 9일이 다가오면서 그 쪼임이 더해간다. 앞선 자는 설렘으로, 쫓는 자는 초조함으로 뛴다. 그런데 그 복판에서 옆으로 비켜나 있는 표심이 있다. 흥미도 잃고, 쪼임도 없어 보이는 표심이다. 한때 우리 사회 최대 주주(株主)라 으스대던 보수표다. 제대로 된 의견도 못 낸다. 정치적 질식이다. 대표로 삼을 후보도 없다. 정치적 표류다. 가혹하다 하겠지만 지금의 보수를 달리 표현할 길은 없다.

이런 보수를 더 희롱하는 말이 있다. ‘홍ㆍ찍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당선된다-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철옹성이다.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40% 주변에서 요지부동이다. 안철수 후보가 따라붙지만 힘에 부친다. 결국, 보수표를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포스터에서 당명(黨名)을 지운 것도 그래서다. 북(北)을 성토하며 안보 전도사를 자임하는 것도 그래서다. ‘홍ㆍ찍ㆍ문’은 이렇게 ‘주인 없는 보수표’에 적용된 잔인한 셈법이다.

작금의 대선에서 평시(平時) 1등이던 보수였다. 덧셈 뺄셈 공식에서 늘 상수(常數)였다. 노무현ㆍ정몽준 단일화(17대)에는 이회창이 상수였고, 문재인ㆍ이정희 연합(19대)에는 박근혜가 상수였다. 그게 달라졌다. 상수의 자리에 진보로 뭉친 문재인이 자리해 있다. 보수표는 2등 안철수의 대(大)역전을 점쳐보는 종속변수(從屬變數)로 전락했다. 참 초라해졌다. 보수들도 이 현실을 받아들인다. 안 후보 쪽으로의 전향이 곳곳에서 보인다.

전향의 변(辯)은 뻔하다. -“어차피 홍준표는 안 된다” “문재인은 싫다” “그래서 맘에 안 들지만 안철수를 택하겠다”-. 보수의 소신을 바꿨다는 얘기는 끝까지 안 한다. 어쩔 수 없는 차선이라고 변명한다. 여기엔 언론도 군불을 지핀다. 차마 ‘소신 투표 하지 마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한다. 대신 ‘보수표 분산=문재인 당선’이라고 계속 써댄다. 이제 ‘소신 투표’는 누군가에겐 금기어다. ‘불공정하다’는 항의를 누군가에게 받게 될 화두다.

‘보수여! 소신을 버려라! 될 사람에게 몰아주라!’ 이래야 옳은가. 이렇게 쓰는 것이 옳은가.

한국인은 평균 81년을 산다고 한다. 19세라면 12번 할 수 있고, 40세라면 8번 할 수 있다. 60세라면 4번밖에 남지 않았고, 80세라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에게 몇 번 남지 않은 대선이다. ‘누가 싫으냐’가 아니라 ‘누가 좋으냐’로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축구 한ㆍ일전 때가 그랬다. 돈 따겠다고 일본팀에 걸면 안 되는 거였다. 뜨거운 심장이 향하는 한국에 걸어야 하는 거였다. 그렇게 해야 이겨도 행복하고 져도 떳떳한 거였다.

흔히들 전략 투표를 설명할 때 결선 투표를 말한다. 그리고 결선 투표의 좋은 예로 프랑스 대선을 든다. 1차 투표는 소신 투표, 2차 투표는 전략 투표라고 구분 짓는다. 그 프랑스 대선이 지금 치러지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2002년 프랑스 대선에는 16명이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시라크 1등(19.88%), 르펜 2등(16.86%)이었다. 주인 없는 63.26%가 2차 투표에 합류했다. 결과는 1차 결과처럼 시라크 승리였다. 2012년 대선의 1차 투표는 올랑드 1등(28.63%), 사르코지 2등(27.18%)이었다. 결선 투표 승자는 이번에도 1차와 같은 올랑드였다. 1차는 소신 투표, 2차는 전략 투표라는 구분은 프랑스 대선 어디에도 없다. ‘결선투표=전략투표’라는 논리는 거짓말이다.

‘뭔ㆍ찍ㆍ뭔’, ‘누구를 찍으면 누가 된다’, ‘누가 싫다면 누구를 찍어라’…. 한국에서만, 그리고 19대 대선에서만, 그리고 보수표에만 주입되는 옳지 않은 주문(呪文)이다.

 

김종구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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