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정부는 광복 70주년, 한ㆍ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5년 말 ‘위안부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아베 정권이 그해 6월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를 작성해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180도 달라졌다. ‘발간 형태를 다시 검토 중’이라며 발을 뺐다.
대신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당초 정부 계획대로 ‘백서’로 발간되지 않고 민간 연구용역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보고서 앞쪽에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진의 의견이며, 여성가족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님을 밝혀둡니다”라고 했다.
여가부가 ‘위안부 백서’를 철회하고, 민간 연구용역 형태로 발간한 것은 한일 위안부 합의 때문일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부 장관 회담을 통해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양측 합의사항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합의사항은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 한국 정부 주관의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예산 투입,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적절한 해결 등이다. 합의사항이 이행되면 향후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키로 했다.
이 합의와 관련해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 위안부 합의에 대해 ‘과거 민간모금액 위주였던 아시아 여성 기금보다 진전된 내용’ ‘아베 내각을 상대로 정부의 책임 통감, 정부 예산에 의한 금전 조치 등의 약속을 받아낸 것은 높이 평가’ 등으로 적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합의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과 나눔의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이 1년 넘게 반발 시위를 하고 있음은 다루지도 않았다.
위안부 관련 정부 차원의 보고서가 나온 건 1992년 외무부 보고서 이후 25년 만이다. 그런데 정부가 백서 하나 제대로 발간하지 못하고 민간보고서 형식으로 논란거리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런 정부가 부끄럽다.
이번 민간보고서는 내용도, 공개 시점도 문제다. 주요 대통령 후보 대부분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 뜻을 밝혔는데, 선거 며칠 전 공개한 의도가 좋지 않아 보인다. 새 정부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해 백서 형태로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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