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3일 오전 11시. 안양 교도소 본부 2층 분류심사과장실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들어섰다.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12ㆍ12와 5ㆍ18에 대해선 진술하지 않겠소.(전)” “주소는 어떻게 되십니까.”(검) “으음, 모르겠는걸”(전). “그럼 전화번호는”(검).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전화 다이얼을 돌려본 적이 없거든”(전). 김 부장이 보리차를 권했다. 그러자 전씨가 말했다. “나 오늘부터 단식을 시작했어.” ▶단식 18일째, 전씨가 경찰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래도 단식은 계속했다. 12월 29일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담당 의사가 전씨에게 말했다. ‘단식을 계속하면 치매가 올 수 있습니다’. 그제야 전씨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27일간의 단식이 그렇게 끝났다. 단식을 끝내며 전씨가 탄식했다. “죽는 것마저도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1998년 4월 경향신문 연재 ‘秘錄, 문민검찰 특별 조사실’ 중에서-. ▶언론에는 전씨의 건강이상설이 보도됐다. 구속수감 86일만의 재판정 출석을 앞두고 검찰도 긴장했다.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이 의료 장구까지 갖추고 법정에 대기했다. 하지만, 막상 취재진 앞에 나타난 전씨는 당당했다. 검찰 측 공소사실에 또렷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돈을 건넨 기업인들에 대해 일일이 인물평까지 내놨다. 기자들이 구치감에 입감되는 전씨에게 물었다. “건강이 어떻습니까.” 전씨가 여유 있게 답했다. “매우 좋습니다.” ▶대선 기간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식설이 나돌았다. 건강 이상설도 있었다. 모두 일부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판명났다. 그럼에도, 그의 건강 문제는 끊임없이 관심을 끌었다. 재판 직전에는 “얼굴이 심하게 붓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다. 지병인 부신피질기능저하증으로 인한 증상 같다”는 측근의 전언도 있었다. 하지만, 53일만에 모습을 보인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은 특별히 나빠 보이지 않았다. 눈빛은 강했고 자세는 곧았다. ▶재벌 총수들은 구속되면 중환자가 된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기 일쑤다. 산소 호흡기를 매단 채 입정(入廷)하기도 한다. 변호인들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침소봉대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국민 눈에는 병보석을 위한 ‘소송 기술’로 비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달랐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프다’고 하지도, 풀어달라고도 하지도 않는다. 그게 더 굴욕이라 여겨져서일까.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