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연결되지 않을 권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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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올해 1월1일부터 발효된 새 근로계약법은 근로자들의 ‘접속 차단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한다. 업무시간 외 퇴근 후나 휴일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전화나 이메일,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된 것이다. 독일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일부 회사가 노사협약을 통해 퇴근 이후 이메일·메신저 사용을 제한한 사례가 있지만, 프랑스의 새 노동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돼 의미와 파장이 크다.

 

국내에서도 퇴근하면 SNS를 금지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4월부터 밤 10시 이후 카카오톡으로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로 정하고 어길 시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CJ그룹도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퇴근 이후와 주말에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했다. 7개 증권 회사는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켰다.

 

퇴근 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의 업무 지시는 근로자 일상생활에 스트레스를 준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ㆍSNS 보편화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 심지어 휴일에도 업무지시가 이어지면서 근로자들은 핸드폰 보기가 무서워지는 이른바 ‘메신저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때문에 근무시간 이외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전화, 메일,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 일명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다.

 

지난해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에 회부돼 있다. 별 진척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에 대한 공약을 내놨다.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많아지자 대선 당시 근로시간 외 전화·문자메시지·SNS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제한해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공약을 빠르게 이행하고 있어 지지부진했던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 법안도 빠르게 처리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에 맞춰 퇴근 후 업무 지시 제한을 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 질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근로시간 보다 상당히 길다. 퇴근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이어지는 업무 관련 메시지와 이메일. 근로자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사생활 존중 차원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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