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분노 조절장애 범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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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충주의 한 원룸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을 방문한 수리 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평소 인터넷 속도가 느린 것에 불만을 품었던 이 남성은 수리 기사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경남 양산에서 40대 남성이 15층 아파트에서 밧줄에 의지해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작업자의 밧줄을 끊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작업자의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피해자는 아내와 고교 2학년생부터 27개월 유아까지 5남매, 칠순 노모 등 7식구를 부양하는 가장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두 사건 모두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른 범죄다. 최근 30대 여성이 헤어진 남자친구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의정부 사건도 그렇고, 연세대 대학원생이 텀블러에 못과 전선을 넣어 만든 사제 폭탄을 교수를 향해 터트린 사건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충동 범죄였다.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흉기를 휘두르는 분노 조절 장애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에 살면서 누적된 불만과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하다가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해 발생하는 범죄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분노 지수가 이미 끓는 점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 피해는 쉽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노약자, 여성, 아동, 힘없는 근로자 등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받고 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상해나 폭행 등 폭력범죄 37만2천723건 중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에 있는 경우가 41.3%(14만8천35건)를 차지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범죄 건수 975건 중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이 원인인 범죄도 41.3%(403건)에 달했다.

 

경쟁이 심할수록, 실직률이 높고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불평등하다는 피해 의식이 강해질수록, 누군가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는 자기 비하가 심해질수록 이런 종류의 범죄가 많아진다. 분노 조절 장애형 범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어렵고 각박해졌다는 뜻이다.

 

미국의 의학박사이자 심리학자인 해리 밀리스는 ‘분노 비용’이란 책에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조울증, 행동 장애, 분노 조절 장애 환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불만과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방관할 게 아니라 분노 조절 장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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