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블라인드 채용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과 공공기관 이력서에 학력과 출신지, 신체조건 등을 적는 칸이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회의에서 공공부문의 ‘블라인드(blind) 채용’을 지시하면서다. 블라인드 채용은 인사담당자가 지원자의 신원이나 배경 등과 관련된 조항을 모르게 하고 실력이나 인성 등 객관적 평가기준에 따라서만 채용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재 공무원 시험 응시 원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자우편, 전화번호, 국적을 적고 사진을 붙이게 돼있다. 공무원 일반 채용에는 2005년부터 원서에 학력란 등을 없앴고, 면접 때 시험관들에게 응시자의 학력·연령·시험 성적 등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해왔다.

 

몇몇 기업들에서도 이력서를 없애고 학력이나 학점·영어점수·사진을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탈스펙 채용 전형인 ‘바이킹 챌린지’를 2013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학력 등 스펙 기재 없이 ‘자기 소개’ 자료만 업로드하면 서류 심사가 끝나는 방식이다. 오디션과 심층면접을 통해서만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롯데그룹도 ‘스펙태클’이라는 블라인드 채용제를 운영하는데 서류 심사는 ‘직무 관련 에세이’로만 평가한다. 샘표도 2012년부터 성별·나이·종교·출신학교·학점·어학점수 등 스펙을 보지 않는 ‘열린 채용’을 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실력을 갖추고도 학벌이나 스펙이 달려서 사회 첫 출발부터 공정하게 겨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긍정적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구직자 3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4%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어서’ ‘실무에 필요한 역량에 집중할 수 있어서’ ‘학벌 등 불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돼서’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반면 우려 섞인 목소리들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모든 취업 준비생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이력서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끼와 재능을 검증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채용 과정에서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이 또 다른 검증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등 비효율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자기 계발에 투자하면서 ‘스펙’을 쌓아온 취업준비생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역차별일 수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 맞춘 사교육이나 전문업체가 성행하는 등의 폐해도 벌써 발생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확산을 위해선 지원자에 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기준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선발할 것이냐 등 현실적인 실행방안이 필요하다.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