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던 ‘문정왕후 어보(御寶)’와 ‘현종 어보’가 65년여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3박 5일간의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2일 오후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들어왔다.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 외교문서나 행정에 사용했던 임금의 도장인 국새(國璽)와는 구분된다. 문정왕후(1501∼1565)는 조선시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다.
문정왕후 어보는 1547년(명종 2년) 중종비인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해 제작됐다. 가로·세로 10.1㎝, 높이 7.2㎝ 크기에 거북 손잡이가 달린 금보(金寶)다. 현종 어보는 1651년(효종 2년) 현종이 왕세자로 책봉됐을 때 제작됐다. ‘왕세자지인(王世子之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옥으로 만들어졌다.
두 어보는 1943년까지 종묘에 보관됐다는 기록이 있다. 문정왕후 어보는 6ㆍ25 전쟁 중에 미군이 종묘에서 훔쳐 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존재가 알려진 건 한국 고미술 수집가인 미국인 로버트 무어가 소장하던 어보를 2000년 LA카운티 박물관이 사들여 전시하면서였다.
이후 어보가 밀반출 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고, ‘문화재 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를 중심으로 2009년부터 환수 운동이 벌어졌다. 한국 약탈 문화재 목록이 담긴 미 국무부 문서 등을 근거로 전쟁 때 미국 병사가 어보를 훔쳐 간 것인 만큼 원래 주인인 한국에 돌려주는 게 맞다는 논리를 폈다.
2013년 7월 LA카운티 박물관은 어보를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도난물이라는 이유로 2013년 9월 압수했다. 로버트 무어가 계속 소장하고 있던 현종 어보도 그때 압수했다. 긴 협상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두 어보가 드디어 돌아왔다. 고국 품에 안기기까지 혜문 스님과 안민석 국회의원,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대통령 전용기편에 실려온 어보 보관함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문재인 대통령은 허리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오는 8월 특별전을 열어 공개할 예정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과 대한제국이 만든 어보 375점 가운데 40여 점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분실과 훼손을 겪었고 한국전쟁으로 상당수 외국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문정왕후 어보를 계기로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재 환수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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