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거가서 무어시 될꼬하니/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야 이셔…’(박팽년). ‘간 밤의 부던 바람에 눈 서리 치던 말가/낙락장송이 다 기우러 가노매라…’(유응부). ‘더우면 곳 픠고 치우면 닙 디거늘/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난다…’(윤선도). 소나무를 소재로 한 시조들이다. 작가의 청렴결백을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의 이런 상징성은 오늘날까지 통한다. 소나무의 꽃 말이 정절(貞節), 장수(長壽)다.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고 있었다. 가지가 처져 있어 가마에 닿으려 했다. 세조가 ‘연(輦)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스로 가지가 올라가 길을 내주었다. 세조가 이를 기특히 여겨 정2품의 벼슬을 하사했다. 소나무의 이미지를 ‘충성’으로 설명하는 일화다. 지금도 충북 보은군 상판리에 살아 있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소중히 관리된다.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집무실의 배경 사진으로 걸렸다. 개혁과 사정을 모토로 했던 시대정신과 연결 지어졌다. ▶3일 독특한 소나무가 등장했다. 정우규 박사가 울산 생명의숲에서 발견했다. 줄기가 스프링 모양으로 자라는 일명 ‘뱀송’이다. 밑동 둘레 2m, 가슴둘레 1.8m, 키 20m 크기다. 11그루가 서로 붙어 마치 1그루처럼 자라고 있다. 정 박사는 “한 개의 솔방울에서 싹이 난 11그루의 쌍둥이 유묘가 지표면부터 서로 줄기를 감고 자라다가 2m 지점에서 생장점 분열조직이 서로 합쳐져 150~200년 동안 한 몸으로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라고 생명의숲 측은 설명했다. 식물학적으로 명명되는 나무의 이름은 ‘11주유 합동체 소나무’다. 그런데 언론은 이와 다른 이름을 붙였다. ‘대화합 소나무’. 출발을 달리하는 객체가 합쳐 하나를 이뤘다는 뜻이다. ‘소통과 화합이 필요한 시대적 사조가 표현된 소나무’라는 주석(註釋)을 붙인 언론도 있다. 200년도 더 됐을 소나무에 갑작스레 부여된 사회ㆍ정치적 의미다. ▶박팽년에게 소나무는 폐위된 단종을 향한 절개(節槪)였다. 그 박팽년을 죽인 세조에게 소나무는 본인을 향한 충성(忠誠)이었다. 바로 그 소나무는 400년 뒤 문민정부에서 개혁(改革)의 상징이 됐다. 소나무에 투영하려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즈음해 발견된 ‘11주유 합동체 소나무’. 사람들은 이번에는 ‘대화합 소나무’라며 소동이다. 아마도 소나무에라도 담고 싶은 ‘화합(和合)’에의 바램일 듯하다. 박팽년이 그랬고, 세조가 그랬고, 문민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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