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낭만과 사명

류설아 문화부차장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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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시절 판사가 되기를 꿈꿨다. 드라마 에피소드 같은, 이제는 흐릿한 기억 하나 때문이다. 지지리 궁상떨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난했던 우리 네 식구는 단칸방에 살았다. 전화도 없었다. 일터에 나가신 아빠는 주인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와 통화하곤 했다. 무전유죄. 사달이 났다. 주인집 여자가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 온 시계가 없어졌는데, 그날 집에 들어온 사람은 아빠 전화를 받으러 왔던 우리 엄마뿐이라며 도둑으로 몰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이웃들이 몰려왔고 엄마는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부랴부랴 달려온 아빠의 호통에 주인집 여자는 쓸데없는 짓이라면서 제 집을 뒤졌다. 장롱 속 두 번째 서랍(아버지는 그 장소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에서 문제의 시계가 나왔다. 그 길로 우리 가족은 또 다른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그때에 가난하고 힘없어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참 낭만적으로 탄생한 장래희망을 이루진 못했지만, 내 안의 낭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20대에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담(美談) 전문 기자를 꿈꿨다. 마음이 부자인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고 이를 읽는 독자가 행복해지는, 그런 기사를 쓰고 싶었다. 현실은 달랐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경찰서를 돌며 미담과는 거리가 먼 범죄자들을 만나야 했고, 낮이면 기삿거리를 찾아 나쁘고 잘못된 곳만 찾아다녔다. 낭만이 끼어들 틈 없는 현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비 낭만적인 사람들. 내가 그렸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삶이었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적기사를 쓰고 나면, 힘없는 이들에게 희망이 돌아갔다. 낭만은 사명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최근 전국의 뛰어난 인재들이 본보 입사시험을 치렀다. 경쟁률이 25:1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제 곧 서류심사와 논술, 면접까지 치열한 과정을 통과한 ‘후배님’들이 들어온다. 드디어 직장인이 된 그들은 얼마나 많은 꿈을 꾸고 있을까. 그러나 입사 후 생각과 다른 생활에 자진 퇴사를 결정하는 신입 기자를 숱하게 봐왔던 나로선 축하보다는 당부하고 싶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나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중)

 

류설아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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