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이라는 게 있다. 신장이 불순물을 제대로 거르지 못해 체내에 독이 쌓이면서 신장을 단기간에 망가뜨리는 질환이다. 정식 명칭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ㆍHemolytic Uremic Syndrome)’이다. 주로 덜 익힌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하는데,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이 집단 감염된 후 ‘햄버거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당시 햄버거 속 덜 익힌 패티(고기)가 원인으로 드러났고, 후속 연구에 의해 그 원인이 ‘O157 대장균’으로 밝혀졌다.
HUS는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환자 중 2~7%에서 발병한다. 성인보다는 주로 영유아에게서 발병 빈도가 높다. 이 병에 걸리면 심한 설사와 구토, 복통 등과 함께 경련, 혼수 등이 일어난다. 아직까지 적절한 예방법 및 치료법은 없으며 신장 기능이 손상된 경우 투석, 수혈 등의 조치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사망률은 발생 환자의 5~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서 햄버거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발단은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린 4살 아이의 엄마가 지난 5일 “덜 익은 패티 때문”이라며 맥도날드 한국지사를 식품안전법 위반 등으로 고소한 이후다. 그의 딸은 지난해 9월 평택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2∼3시간 뒤 복통을 느꼈다고 한다. 상태가 심각해져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자 3일 뒤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HUS 진단을 받았다고 피해자 가족 측은 주장했다. 아이가 신장 기능의 90%를 잃고 하루 10시간씩 투석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맥도날드 측은 “발병 원인으로 수입 쇠고기를 언급했지만, 사건 당일 고객이 먹은 제품에 사용된 패티의 원재료는 국산 돈육이고 내장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런 내용들이 인터넷과 SNS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햄버거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돼 패스트푸드점마다 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불안해 아이한테 햄버거를 못먹이겠다’ ‘맥도날드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등의 글도 퍼지고 있다.
햄버거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어른들도 간편식으로 즐겨 먹는다. 햄버거 포비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보건당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 식중독균 감염 원인부터 인과관계까지 밝혀내야 할게 많다. 사건이 불거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햄버거 업체들에 “패티를 잘 익혀 내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이한 대응이다. 보건당국은 국민 건강을 위해, 불안감 해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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