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데이트 폭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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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20대 남성이 일주일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남성은 여성을 벽으로 밀어붙인 뒤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여성이 쓰러지자 발길질을 해댔다. 시민들이 달려들어 피투성이가 된 피해 여성을 떼어놨다. 그러자 남성은 인근에 세워 둔 1t 트럭을 몰고와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피해 여성은 치아 5개가 부러졌고, 얼굴엔 타박상을 입었다.

 

연인간 폭력인 ‘데이트 폭력(Dating Abuse)’ 문제가 심각하다. 데이트 폭력은 서로 교제를 인정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협이나 폭력행위 등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연인관계에 있거나 연인관계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를 갖고 행하는 신체적ㆍ정서적ㆍ언어적ㆍ성적 폭력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흔히 폭언ㆍ폭행ㆍ협박ㆍ성폭행ㆍ성희롱ㆍ스토킹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트 폭력 발생 건수에 비해 실제 신고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수사기관이 데이트 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등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다. 경찰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2015까지 해마다 100여명의 피해자들이 데이트 폭력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만 해도 데이트 폭력으로 8천367명이 형사 입건됐다. 폭언, 폭행을 넘어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볼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데이트 폭력을 막을 수단은 가정폭력에 비해 제한적이다.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긴급임시조치로 격리조치를 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이같은 법이 따로 없어 살인·성폭행·상해 등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 처리된다. 박남춘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데이트폭력처벌특례법’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됐다.

 

경찰이 오늘부터 데이트 폭력, 성추행 등 젠더 폭력을 막기 위한 ‘여성 폭력 근절 100일 계획’을 10월 31일까지 추진키로 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민생치안 확립 및 사회적 약자 보호’의 일환이다. 이와 함께 데이트 폭력을 막기 위해 한국판 ‘클레어법(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클레어법은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끝내 살해된 ‘클레어 우드’의 이름을 딴 영국 법으로 지난 2014년 시행됐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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