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 어디 있어.” 기자실 문이 부서질 뻔했다. 난입(?) 주인공은 수원지검 이정수 차장 검사였다. 당황해하는 이 기자에게 달려들어 옷깃을 잡아챘다. 옆자리 기자들이 몸싸움을 벌여가며 둘을 떼어 놓았다. 양팔을 붙잡히고도 이 차장의 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야, 너만 사명감 있어? 우리 검찰도 국익 생각해.” 1998년 2월 중순 어느 날 수원지검 기자실이었다. 꽤 된 일이다. 현장에 있던 10여명의 기자들은 요즘도 가끔 얘기한다. ▶당시 수원지검에서는 특별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삼성 반도체 연구원들이 기술을 빼냈다. 64 메가 D램의 회로도, 디자인룰 등이 대상이었다. 이렇게 기술이 빠져나간 곳은 대만의 N사였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과 경쟁 중이던 대만이었다. 검찰은 ‘국익’이라는 가치를 수사에 부여했다. 그러면서 ‘엠바고’(비보도)를 요청했다. 이 요청을 이○○기자가 어겼고, 이 차장이 기자실에 ‘난입’한 거였다. ▶‘엠바고’는 한번 깨지면 봇물이 터진다. 하지만, 그땐 달랐다. 그 후에도 보도는 차분했다. 검찰 수사를 결코 앞서가지 않았다. 기자들 역시 반도체 기술 유출이 갖는 ‘국익’이란 가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달여만에 수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술 유출을 총괄했던 15명이 구속됐고, 기술을 빼낸 전 삼성 연구원 등 4명도 구속됐다. ‘결정적 기술 유출을 방어했다’는 업계 평가도 나왔다. 돌아보면 검찰과 ‘국익’으로 하나됐던 유일한 경험이다. ▶그 ‘수사’와 ‘국익’의 연결 논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문무일 검찰총장 청문회에서다.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이 “수사의 초점을 방산비리에 맞춰야지 수리온 헬기의 하자를 부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훈련기 교체 사업 추진이나 동남아 수출 MOU 체결 등을 알고 있느냐”고도 물었다. 문 후보자는 “총장에 취임한다면 해당 수사가 공정하게, 국가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치적 중립 자세를 지키며 잘 관리하겠다”라고 답했다. ▶사실 그렇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국내 유일의 방산 우주 기업이다.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는 미 공군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APT)에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다목적 헬기 수리온은 우리가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헬기다. 검찰 수사 이후 수리온 등의 결함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 ‘원가 부풀리기’ 수사도 국제 거래에 어울리지 않는 수사 쟁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충분히 이유 있는 지적이다. 참고할 만한 지적이다. ‘국가 미래에 도움되는 수사’를 약속한 검찰총장 후보자의 답변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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