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블라인드 채용의 이면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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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공기관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학력ㆍ지역 등의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기회ㆍ공정한 과정’을 통해 외형보다는 내실있는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취업용 이력서에 학력ㆍ출신지역ㆍ종교ㆍ가족관계ㆍ신체조건ㆍ증명사진 등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다. 면접에서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도 없으며, 직무관련 질문만 받게 된다.

 

민간기업들도 정부 방침에 따라 블라인드 채용 계획을 세웠다. 롯데는 능력중심 채용을 위해 ‘스펙 태클 오디션’을 한다.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태클을 건다(Spec-tackle)는 의미로 직무수행에 적합한 능력만 평가, 인재를 선발한다. 입사 지원서엔 기본 인적사항만을 기재토록 하고, 해당 직무와 관련된 주제의 에세이나 자기 홍보 동영상만을 받아 서류합격자를 선발한다. 

신세계는 드림스테이지를 통해 면접을 오디션방식으로 한다. 스펙 중심의 평가방식에서 탈피, 열정과 직무 역량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면접이다. CJ그룹도 대졸자 공채에서 서류 전형 과정을 100% 블라인드로 진행한다. CJ는 특히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인드 채용이 ‘뒷배경’을 보지 않고 실력만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는 면에서 공감을 얻고 있으나 한쪽에선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당장 ‘동네사진관’들이 굶어 죽겠다며 일어났다. 사진관 업주 등이 회원인 한국프로사진협회는 최근 서울에서 총궐기대회를 통해 “이력서 사진 부착 금지 철회를 강력히 주장한다”며 “증명사진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진관은 폐업하게 되고 사진사 수만명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렇잖아도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동네사진관이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다. 사진관 수는 2007년 3만여 곳에서 10년 만에 8천여 곳으로 줄었다. 반려동물 전용사진관 등 특화로 살길을 모색하는 이도 있지만 극히 일부 얘기다. 이들은 사진관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증명사진 일감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반면 면접의 비중이 커지다보니 성형외과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호감있는 외모를 갖추기 위한 ‘취업 성형’ 때문이다. 이에 성형수술 비용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젊은이들이 많단다. 면접은 인상 좋고 언변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보니 ‘표정 성형’도 한다. 말과 표정, 손짓, 아이콘택트까지 가르치는 면접학원들이 인기다. 발성 연습과 밝은 표정, 예상 질문 답변 등 마치 배우수업 하듯 한다. 자기소개서 등을 작품처럼 만들어내는 학원들도 있다. 취업은, 이래저래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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