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군함도와 스크린 독과점

이선호 문화부장 lshg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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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극장, 대한극장 등 동네 번화가에 있던 향토극장들은 나름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누구나 한번쯤 중ㆍ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면 이들 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하고, 극장매점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따끈따끈하게 구운 오징어를 사 영화 보는 내내 씹어 먹던 추억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이른바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했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린 향토 극장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놓고 말들이 많다. 군함도는 개봉 8일만(2일)에 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최단기간 500만 돌파 기록이라고 한다.

군함도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멀티플렉스 극장도 운영하는 대기업이다. 군함도 개봉시 스크린 수가 2천여 개가 넘었다. 한 영화가 스크린 수 2천개 이상을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논란이 될 만하다. 일부 영화계에서는 영화 개봉시 스크린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80년대 다국적 직배사들이 한국영화 시장에 진출하자 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다. 당시 직배사가 배급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뱀을 풀어놓는 등 저항은 대단했다. 모두 우리 영화를 지키자는 논리였다. 이렇게 해서 스크린쿼터제가 강화됐는데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는 73일로 완화했다. 스크린쿼터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관객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을 찾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고 되레 극장에서 강세를 보인다.

 

군함도는 한국 영화지만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다. 대기업이 투자ㆍ배급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스크린을 잡을 수 있었을까?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성 영화관을 운영하는 등 다양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지만, 이는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 500만, 1천만 관객이 본 한국영화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어두운 그림자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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