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경기농업에는 수장이 없다’는 말을 했다. 고구려 을파소란 재상으로 한 걸음 더 나가보자.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대국이다. 9대 고국천왕(179~197) 때다. 고국천왕은 키가 9척이나 되고 힘이 대단히 세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했다. 삼국사기는 결단력과 관대함, 예리함을 두루 갖춘 리더의 자질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인재를 알아본 왕이었다. 즉위 초 어수선한 국내외 사정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치를 하려고 할 때다. 부족들에게 인재 추천을 권유했고 안유를 통해 을파소를 소개받았다.
시골 촌부로 농사일에 전념했던 을파소는 고국천왕을 믿고 국상에 올라 함께 이상을 실현해 갔다. 물론 시기꾼들도 많았지만, 고국천왕은 “귀천을 막론하고 만일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친족까지 벌을 줄 것이다”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을파소는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막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 결국, 그가 꿈꿔왔던 진대법을 세상에 내놨다. 봄철 춘궁기에 식량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대신, 10월 추수 후 되돌려 받는 제도다. 진대법이 실시되자, 온 나라 사람들은 기뻐하고 고국천왕과 을파소를 칭송했다. 진대법은 국력증진의 발판이 됐고 태평성대의 단초가 됐다. 고구려의 수장이었던 고국천왕과 을파소의 이야기다.
되돌아 경기농업 수장에 대해 직설화법으로 가보자. 현재 경기농업을 총괄하고 있는 농정국장은 농업직이 아니다. 일반 행정직 출신이다. 이런 관행은 지난 2년 동안 계속돼 왔다. 그 사이 국장은 4명이나 바뀌었다. 평균 6개월 동안 잠시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농업 정책에 일관성이 있겠는가? 한시적 성과에 급급하면서 거쳐가는 자리였다 해도 이견이 없을 듯하다.
수장은 폭넓은 식견과 그 분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경기농업 예산이 일반회계대비 3%대를 넘어섰다. 다원적 사회속에 날로 증대해지는 농업 위상에 맞춰 시의적절한 대처다. 그러나 이를 이끌고 책임져야 할 수장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욱더 가관이 아닐 수 없다. ‘3급 부이사관 이상 농업직 2자리 원칙’ 때문이란 말도 있다. 인사원칙상, 4급이면 기술직렬이 통합되고 3급 직렬은 구분이 없어지는데도 말이다. 농업직 2명 이상 안 된다는 논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국천왕과 을파소가 아쉬운 대목이다.
김동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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