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코리아 패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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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말 그대로 ‘한국 건너뛰기’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인 북한ㆍ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한국을 배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국 무시, 한국 왕따다.

 

지난 일주일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와 맞물려 국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말이 ‘코리아 패싱’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2차 시험 발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1시간 가까이 통화하며 북한 미사일 발사 대응책을 협의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주변국과 소통을 하지 않았고, 휴가에 들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면서 야당이 들고 나선 게 코리아 패싱이다.

 

야당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 빅딜설, 대북 선제타격론, 미북 대화설 등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 별 존재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고 공언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코리아 패싱은 대선 정국 때 여러 차례 등장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임박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대선 후보 간 공방이 커지면서 우리 뜻에 반해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코리아 패싱론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한반도 ‘4월 위기설’도 나왔다.

 

최근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발언으로 코리아 패싱론이 확산됐다. ‘중국이 북한 붕괴에 협조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키신저의 아이디어가 단초였다. 논란이 심해지자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 대리가 나서 “한ㆍ미 동맹은 튼튼하며 코리아 패싱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서도 “한·미 간에 거의 매일 대화가 이뤄진다”며 코리아 패싱론을 일축했다.

 

우리끼리, 코리아 패싱 운운하며 정치 공세를 펼치는 모습을 미·중·일·러 주변국들은 어떻게 볼까. 코리아 패싱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지만, 대책을 세워야지 논쟁만 펼칠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해방, 남북 분단 등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사를 강대국들이 결정하면서 코리아 패싱을 경험한 바 있다. 작금의 현실을 다시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 수출의 33% 차단 등 강력한 대북 제재를 내놓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한국을 미국이 쉽게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란 인식을 접고, 북핵ㆍ북한 문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를 통해 코리아 패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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