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대통령의 계란 시식

통일벼를 개발한 이는 허문회 박사다. 그가 생전에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시험 재배장을 찾았다. 방문에 맞춰 시식 겸 밥맛 평가회를 했다. 박 대통령과 일행이 ‘맛이 좋다’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당장 종자를 최대한 증식하라’고 했다. 이후 필리핀까지 오가며 종자를 대량 생산했다. 그렇게 71년 말 보급된 게 ‘통일벼’다. 원래는 몇 년 더 연구하려고 했다.” 그 시절 대통령의 시식은 국가 정책까지 좌우했다.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1984년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들렀다. 벼 베기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빚은 떡을 맛본 전 대통령이 일장 훈시를 했다.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탐스럽게 영근 햇과일을 먹으니 더욱 풍년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 풍년 축제를 갖도록 지원해주라”고 일행에게 지시했다. 참석했던 농부는 “대통령의 좋은 말씀을 하루 종일 듣고 싶다”며 화답했다. 전 대통령의 시식은 권력의 과시였다. ▶유독 시식 문화를 선호했던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8년 봄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강타했다. 국민 사이에 가금류 공포가 확산됐다. 소비가 급감했고 축산농이 위기에 처했다. 그즈음 이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을 깜짝 방문했다. 기자들과 함께 오찬을 했고 준비된 음식이 삼계탕이었다. 하루 전에는 전북도청을 방문해 오리 훈제를 먹었다. 닭과 오리고기를 먹는 대통령 모습이 연일 신문방송에 나왔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곤욕을 치렀던 것도 시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정국 때다. 인터넷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시식을 권하자’는 청원 운동이 일었다. 식품 안전이 논란을 빚을 때마다 ‘먹어도 된다’며 시식 정치를 했던 그다. 그가 쇠고기 파동 정국에서 ‘먹어 보라’는 유례없는 역(逆) 시식 공격을 받았다. 그만큼 대통령의 시식 정치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살충제 계란’ 사태로 계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료를 냈다. ‘피프로닐 계란을 1~2살 영유아는 하루 24개, 성인은 126개까지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다. 그런데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게 자승자박이다. ‘국내에는 살충제 계란이 없다’는 거짓말로 신뢰를 잃었다. 그런 식약처가 ‘125개는 먹어도 된다’고 하니 어느 국민이 믿고 먹겠나. 무능한 식약처 행정이 대통령의 ‘계란 시식’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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