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되면 등장하는 ‘시장 군기 잡기’
시민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복수戰
공천 원칙 서면 당장에 없어질 관행
그런데 이곳만 이런 게 아니다. 비슷한 정보가 부쩍 늘고 있다. 사나흘 전 보고서는 그 옆 동네였다. 역시 시장과 국회의원에 얽힌 갈등 얘기다. -국회의원이 내년에 현 시장이 아닌 다른 사람을 후보로 점찍고 있다. 그러자 시장이 ‘무소속 불사’로 맞불을 놓고 있다. 유력 정당 소속의 시장이다. 후보가 쪼개지면 공멸(共滅)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보고서에도 기자의 주석은 달렸다. ‘4년 전 선거판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보니 때가 됐다. 지방 선거까지 10달도 안 남았고, 공천까지는 그보다 짧게 남았고, 그 공천으로 가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전에도 이 즈음엔 이랬다. 국회의원이 시장을 흔들기 시작했고, 시장은 그 흔들기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1년여 뒤 공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현직 교체 가능성’을 흘리며 흔들어 댔다. 현직 시장의 명(命)을 그들이 틀어쥐고 있음이 그렇게 4년에 한 번씩 확인됐다.
그런데 이런 갈등이 유독 잦은 몇 지역이 있다. ‘워크숍 갈등’ 동네는 전임 때부터 그렇게 싸웠다. ‘무소속 갈등’ 동네는 공천갈등이 공식처럼 됐다. 그렇게 싸우는 곳이 잘 될 리 있나. ‘워크숍 갈등’ 동네는 이런저런 민원으로 시끄럽다. 방대한 지역 자산을 두고도 여전히 변방(邊方)이다. ‘무소속 갈등’ 동네는 역대 시장 전원이 법정에 끌려갔다. 시금고가 거덜나 부도 위기로까지 몰렸더랬다. 갈등 역사와 결과가 묘하게 들어맞는다.
지방자치 25년이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신물 날 때도 되지 않았나. 여인국 전 과천시장-세 번 공천 받고, 세 번 시장 했던-에게 물었다. ‘세 번 연임했는데, 재임 중 지역 국회의원과의 갈등이 없었기로 유명합니다. 비결이 뭐였나요.’
“신뢰죠. 2002년 처음 출마했을 때 내 손을 잡고 뛰어 주셨습니다. 때마침 그 의원의 후원회에 성의껏 준비한 후원금을 냈습니다. 그랬더니 ‘돈도 없을 텐데 보태 쓰라’며 모두 돌려주셨습니다. 그 후 ‘도전하지 않는 자세’로 갚았습니다. (당시 젊은 나이였던 내게) 이런저런 유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분에게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데도 그렇지 못한 곳이 많잖아요.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보태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투박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 전 시장조차도 마무리 말엔 뼈를 섞어 넣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공천 제도 속에서는 ‘짜고 치는 공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근본적으로 공천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완벽하고 투명한 공천 기준이 제시돼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공천이) 꿈 같은 얘기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지만요….”
그의 말이 맞다. 사달은 제도에 있다. 국회의원 개인의 의중이 곧 공천 기준이 되는 제도가 문제다. 이러니 국회의원이 군기를 잡는다. 시장은 그런 국회의원에게 모든 걸 건다. 공천 헌금 때문에 업자에게 뇌물 받고, 돈다발 들고 국회의원 쫓아 고속도로를 내 달린다. 시장은 이때 받은 모욕을 당선 뒤 보복한다. 행사장 순서에서 국회의원 인사말 빼버리고, 의원 지역 사업을 뒤로 밀어낸다. 시민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전쟁이다.
‘꿈 같은 얘기’는 접자. 이번에도 공천 개혁은 없을 듯하니. 대신, 유권자의 매서운 눈만은 경고해둘까 한다. ‘공권천은 내게 있다’며 거들먹거리는 국회의원들. 결국, 유권자가 심판해왔다. ‘표는 내가 쥐고 있다’며 호기 부리는 시장들. 역시 유권자가 심판해왔다. 유권자가 원하는 조건이 뭐가 복잡한가. 일 잘하고, 시민 편에 서고, 검찰에 불려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 시장엔 공천 주고, 그러지 못한 시장은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기준만 지켜도 부질없는 ‘시장 군기 잡기’의 반(半)은 사라질 것이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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