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DDT의 역습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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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떼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신음했다. 재잘거리며 날던 새들도 사라졌다…” 전설적인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의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의 평화롭던 고향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나쁜 마술적 주문에 걸린 것처럼 사방이 죽음의 장막으로 덮였다. ‘어떤 나쁜 마술적 주문’은 다름 아닌, 한때는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DDT였다.

 

▶이 녀석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874년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학자 자이들러가 독일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처음 합성했다. 살충제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선 주목받지 못했다. 스위스 생물학자 뮐러는 1939년 이를 효과적인 살충제로 개발한다. 여러 절지동물 접촉 독성을 보이는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 여파로 발진티푸스 등이 창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50대는 어린 시절 겨울마다 내복의 이와 벼룩 등을 없앤다며 선생님이 뿌려주던 분말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썼던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분말 가루를 뒤집어쓴 동갑내기 얼굴을 쳐다보며 까르르 웃던 시절이었다. 여름이면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골목을 지나가던 소독차량을 따라 달음박질쳤던 추억과 함께 말이다. 그 하얀 분말 가루가 바로 DDT였다.

 

▶이 녀석 덕분에 환경운동이 태동된다. 1969년 미국에선 국가환경정책법이 의회를 통과해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체제가 갖춰진다. 1970년 첫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리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천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환경보호청이 설립됐고, 미국은 1972년 마침내 DDT 사용을 금지한다. 국내에서도 몇 년 뒤 같은 조치가 내려진다. 암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뒤따랐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경북의 모 농장 달걀은 물론 닭에서도 DDT 성분이 검출됐다. 우리가 매일 먹는 달걀이나 닭에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섭고 끔찍하다. 반세기가 흐른 뒤 한반도에서 그 주문이 부활한 것일까. 아니면 DDT의 의도된 역습일까. 아무튼,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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