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인물] 유근(1861~1921)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선 민족언론의 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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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출생. 1898년 남궁억·나수연 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했다. 독립협회에 가입, 각종 토론회를 지도했으며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했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한 직후,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유명한 논설을 쓸 때, 너무 격분해 끝을 맺지 못하자 유근이 그 후반부를 끝내고 밤새도록 인쇄해 배달했다. 

이 사건으로 무기정간을 당했다가 속간되자, 장지연의 뒤를 이어 사장이 돼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활동을 전개했다.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 조선광문회 등에서 활동했다. 1910년 일제가 모든 한국인의 신문을 폐간하자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1915년 경성고등보통학교부설 교원양성소 학생들이 조직한 조선물산장려계의 민족운동을 지도하다가 130여 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3·1운동이 일어나자, 13도 대표자의 국민대회에 대종교계 대표로 참석하고 ‘한성정부’라는 임시정부의 정부체제 선택과 각료 선정에 참가, 활동하다가 붙잡혔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때는 양기탁과 함께 고문으로 추대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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