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전화 끊을 권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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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콜센터 전화상담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전화 끊을 권리’가 도입되고 있다. 전화상담원들은 보통,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상담사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를 시작하지만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건 욕설일 때가 많다.

 

‘야 이 XXX아, 너 몇 살이야?’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영원히 사라지고 싶으냐’ ‘목소리 좋은데 밤에 한 번 만나자’….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겪어야 하는 전화상담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고 성희롱과 협박성 발언까지 이어진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7월 콜센터 근무자 1천1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85%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바 있다.

 

전화상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전화로 갑질하는 ‘진상’ 고객을 퇴치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전화 끊을 권리’다. 대형마트, 홈쇼핑업체, 신용카드사, 지방자치단체 민원센터 등에서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어폭력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고 악성 민원 전화에 업무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지난 7월 ‘고객의 성희롱·폭언·욕설 전화가 2회 경고 뒤에도 계속되면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어도 좋다’는 매뉴얼을 도입했다. 이마트도 지난 3월 ‘폭언과 욕설 고객 상담 거부’ 내용을 담은 매뉴얼을 도입했고, 현대카드도 작년부터 폭언을 일삼는 고객의 전화는 상담사가 경고 후 먼저 끊도록 했다.

고양시 민원센터에서도 언어폭력을 일삼는 민원인에 대해선 먼저 전화를 끊도록 했다. ‘굿모닝 120 경기도콜센터’도 기존 ‘폭언ㆍ욕설, 성희롱, 고의적 괴롭힘 등 악성민원 상담에 대해 1회 경고 후 상담종료’ 항목에, 해당 민원인이 다시 전화를 걸 경우 타 상담사 및 수석 상담사로 연결해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등 운영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막말 전화 끊기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카드의 경우 작년 상반기 막말 전화가 월평균 300여 건 왔지만, 올해 들어선 월평균 120건으로 60% 이상 줄었다. 기업들에서 고객들이 상담사를 정중하게 대하도록 하는 캠페인도 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사회공헌 캠페인 ‘마음이음 연결음’을 통해 직원과 통화 연결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편, 고객의 화를 유발하는 ARS(자동응답시스템) 등 상담센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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