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인물] 안재홍 (1891~1965)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 전한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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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 출신. 1907년에 단발을 하고 상경, 이상재·남궁억·윤치호 등과 교분을 가졌다. 

1910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조선인기독교청년회에 계속 관여, 조선인유학생학우회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15년 귀국해 주로 언론계에 종사하다가, 1916년 상해로 망명해 이회영·신채호 등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서 활약했다.

1919년 3·1운동 만세시위를 지도하는 한편,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해 상해 임시정부의 연통부 역할을 수행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조선일보> 주필을 거쳐 부사장·사장을 역임해 10년 동안 언론인생활을 했다. 1927년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약하다가 잡혔다.

1936년 임시정부와의 긴밀한 활동이 탄로나 2년 동안 복역했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다시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조선철학에도 정진했다. 이는 일본학자들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였다. 8·15광복과 동시에 생겨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부위원장이 됐다. 정부수립 후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납북된 후 사망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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